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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인문

강신주의 감정수업 - 강신주

머리말 및 프롤로그

다양한 우리의 감정

 

 감정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감정이 없다면 삶의 희열도, 삶의 추억도, 그리고 삶의 설렘도 없을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살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우리는 수많은 색깔로 덧칠해진 추억을 꺼내 들며 행복한 미소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 (p.7)

 

 감정을 죽이는 것, 혹은 감정을 누르는 것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겠는가. 그러니 다시 감정을 살려내야만 한다. 이것은 삶의 본능이자 삶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p.17)

 

 슬픔, 비애, 질투 등의 감정도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에, 내일을 더 희망차게 기다릴 수 있으니까. (p.18)

 

 스피노자가 피력했던 감정의 윤리학은 아주 단순한 사실, 즉 타자를 만날 때 우리는 기쁨과 슬픔 중 어느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들은 정신이 큰 변화를 받아서 때로는 한층 큰 완전성으로, 때로는 한층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정념(passiones)은 우리에게 기쁨(laetitia)과 슬픔(tristitia)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 ㅡ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p.20)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자신의 감정들을 부당하게 억압했고, 동시에 그것을 표현하는 데 인색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을 휘감는 감정들에 너무나 미숙하고 서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기 내면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p.24)

 


 

자연 경관

 1부 땅의 속삭임

 1. 비루함(Abjectio) _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지키려는 순간, 충직했던 게라심은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게 될 테니까.

 

비루함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기쁨의 감정은 우리에게 항상 조용히, 그렇지만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랑의 기쁨을 지킬 수 있는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보다도 강하다. 우리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인생을 버텨 나가며 전진을 계속하는 것이다." - 투르게네프

 

습관화된 슬픔, 혹은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슬픔, 그것이 비루함이라는 감정의 실체다.

 

사랑만이 비루함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법이니까.

 

 2.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 _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보석이 있는지를 알았을 때,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긍심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연인의 매력,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그녀가 얻게 된 새로운 변화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서로를 주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아가 서로를 숭배하면서 자긍심을 심어 주는 것이라는 걸.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야.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

 

"아니,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

 

 3. 경탄(Admiratio) _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

사랑은 경탄과 함께 시작되고, 경탄과 함께 유지되는 법이다.

 

아내라는 존재는 청혼에 응하는 그 운명적인 순간부터 여자라는 종에서 벗어나 별도의 잡종이 된다.

 

기존에 속해 있던 '무리'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감정이 사랑이니까 말이다.

 

경탄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이 특수한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그 관념 안에서 확고하게 머문다.

 

항상 떠날 준비를 하라! 상대방에 대해 항상 자유로워라!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자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에만 상대방도 우리를 주인으로 대우할 것이다.

 

 4. 경쟁심(Aemulatio) _ 서글프기만 한 사랑의 변주곡

자기 사랑의 감정이 어떤 수위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잠시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

 

경쟁심이란 타인이 어떤 사물에 대해 욕망을 가진다고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내면에 생기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욕망이다.

 

결국 우정과 사랑은 질적인 차이가 있는 감정이 아니라, 양적인 차이, 혹은 정도상의 차이만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5. 야심(Ambitio) _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

둘 이외에 제3자를 전제하고 있는, 다시 말해 타인이 나에게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내 주기를 바라는 사회적인 감정이다.

 

야심이란 모든 감정을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 정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욕망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야심에 동시에 묶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상한 사람들도 명예욕에 지배된다. 특히 철학자들까지도 명예를 경멸해야 한다고 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마침내 상대방은 내 삶을 과시하는 일종의 장식품처럼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랑에도 이미 야심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을 야심의 먹이로 만들곤 하니까.

 

야심이 강한 사람은 너무나 취약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6. 사랑(Amor) _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당신 뜻대로 하겠어요."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빠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그러니까 '당신 뜻대로'는 일종의 유혹, 내 곁에 있으면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노예로 두고 영원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인 셈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존재를 마냥 갈망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주인공이 된다.

 

"주인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7. 대담함(Audacia) _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

사랑은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을 용사로 만들기도 하니까.

 

대담함이란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

 

그렇지만 대담함을 일종의 욕망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스피노자의 비범함에 다시 한 번 탄복하게 된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기쁨의 증진을 도모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죽으면 대담함이라는 감정, 온갖 불의와 억압에도 당당할 수 있었던 가장 인간적인 감정도 맥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용기와 비겁은 불변하는 성격과도 같은 것이 아니다.

 

오직 위기를 감내하려고 할 때에만 용기와 대담함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8. 탐욕(Avaritia) _ 사랑마저 집어삼키는 괴물

탐욕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불교에서는 '갈애(渴愛)'라는 말이 있다. '목이 마르는 애착'이라는 뜻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개츠비의 꿈만은 오히려 순수했다는 것을.

 

 9. 반감(Aversio) _ 아픈 상처가 만들어 낸 세상에 대한 저주

반감이란 우연적으로 슬픔의 원인인 어떤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어떤 사람을 보았을 때 과거에 미워했던 다른 사람이 떠올라서 슬픈 감정이 들 수도 있다. 이런 경우가 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금 보고 있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미움은 '필연적'이지 않고 '우연적'인 것이다.

 

레싱은 독자들에게 책을 훑어보고 지루하면 과감하게 읽기를 포기하라고 권한다.

 

반감에 쉽게 사로잡히는 사람들은 과거 망령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0. 박애(Benevolentia) _ 공동체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

결국 사람의 마음을 냉담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동시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도 사람이었던 셈이다.

 

박애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자신과 유사한 어떤 것이 어떤 정서에 자극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과 유사한 정서에 의해 자극된다.

 

내 삶이 가장 비참해질 때, 인생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 그만큼 모든 사람을 품어 줄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발적인 가난', 이것이 바로 박애가 드러나는 행동 양식이다.

 

합리적인 것처럼 쿨하게 더치페이를 외치고,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바닥에는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강한 소유 의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시대니까.

 

 11. 연민(Commiseratio) _ 타인에게 사랑이라는 착각을 만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함정

연민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서글픈 감정일 수밖에 없다.

 

연민이란 자신과 비슷하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타인에게 일어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연민의 밑바닥에는 다행히 자기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불행한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연민이라는 거, 아주 위험한 겁니다!

 

그가 당신의 행복을 함께 행복해하고 당신의 불행을 함께 불행해하는 사람이어야만이 여러분은 자신에게 애인이나 친구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12. 회한(Conscientioe) _ 무력감을 반추하도록 만드는 때늦은 후회

이런 감정을 품는 순간이 오면, 그 누구도 다시는 봄날을 기대하기 힘든 잿빛 가을의 저주에 갇히게 된다.

 

회한이란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위기 상황에 이르면 타인을 구원하기는커녕 항상 무력감을 느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어떻게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소망스러운 감정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인 거지요!

 

회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한다.

 

그가 정말로 성숙하고 강해졌다면 결코 회한의 감정이 그를 유령처럼 따라다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회한에 빠진 사람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회한이 없도록 지금 과감하게 선택하고 당당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안개에 둘러싸인 물의 바다

 2부 물의 노래

 13. 당황(Consternatio) _ 멘붕, 즉 멘탈붕괴와 함께하는 두려움

갑자기 그의 허리께, 등뼈의 저 밑뿌리에서 엷은 불꽃이 살짝 피어오르면서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당황이라는 감정은 인간을 무감각하게 만들거나 동요하게 만들어 악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드는 두려움이라고 정의된다.

 

무감각하게 된다는 것은 악을 피하려는 그의 욕망이 경이로움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요하게 된다는 것은 악을 피하려는 욕망이 다른 악을 고려하는 소심함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을 수반하는 감정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욕망을 내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 혹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당황이라는 감정의 정체다.

 

맨얼굴의 욕망을 부정하고 가면의 욕망을 추구하면 할수록, 낯빛은 피폐해지고 삶은 무기력해질 테니까.

 

 14. 경멸(Contemptus) _ 자신마저 파괴할 수 있는 서글픔

프루스트가 말한 것처럼 사랑은 거대한 꿈과 같다. 어쩌면 일시적인 정신착란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황홀한 꿈일수록 깨어날 때는 더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경멸이란 정신이 어떤 사물의 현존에 의하여 그 사물 자체 안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물 자체 안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끔 움직여질 정도로 정신을 거의 동요시키지 못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상상이다.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단호하게 헤어져야만 했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경멸이다.

 

 15. 잔혹함(Crudelitas) _ 사랑의 비극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이기적이었던 사람도 거의 성인처럼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만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이니까.

 

사랑 때문에 더 아프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잔인해질 수 있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에, 우리는 잔인해질 수도 있다.

 

잔혹함이나 잔인함이란 우리가 사랑하거나 가엽게 여기는 자에게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잔인함에 '사랑의 자살'이라는 별칭을 붙여 줘도 되겠다.

 

"아니.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침착함을 유지해야 월터에게 더욱 상처 줄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직감했다.

 

내가 지금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상대방의 가슴에 잔인한 행동과 잔혹한 말을 비수로 던져 피를 흐르게 할 참이다.

 

 16. 욕망(Cupiditas) _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

그 갈증은 단지 성적 욕망만이 아니라, 낭만과 모험, 죄악, 광기, 야수성 같은 금지된 모든 것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었다.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감정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 욕망은 자신의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이고, 충동은 인간의 본질이 자신의 유지에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역할이다. 결국 이성의 윤리학은 사회의 윤리학이지 '살아있는 나'의 윤리학일 수는 없다.

 

욕망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삶을 유지하거나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한자라는 것은, 신조차 누릴 수 없는 축복일 수도 있고 비극일 수도 있다. 우리가 관계를 맺어 나가는 타자들이 내 삶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미리 결정할 수 없으니까.

 

자신의 본질인 욕망을 지킬 수도 없는 비겁함과 나약함이 또한 인간의 특징 아닌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복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몸 전체가 불꽃이었다."

 

인간에게는 원숭이와 같은 속성이 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욕망하는 것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것을 실현해 보아야만 한다. 실현의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 나의 것이었는지 타인의 것이었는지 사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 동경(Desiderium) _ 한때의 기쁨을 영속시키려는 서글픈 시도

네 품에서 작고 벌거벗은, 힘없이 스러질 것 같은 그녀를 느껴.

 

흥미로운 것은 콘수엘로가 아무리 기력이 빠져도, 죽을힘을 다해 동경의 대상을 상상해 낸다는 점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떻게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동경이란 어떤 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 또는 충동이다. ... 우리가 자신을 어떤 종류의 기쁨으로 자극하는 사물을 회상할 때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같은 기쁨을 가지고 그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이 노력은 그 사물이 있다는 것을 배제하는 사물의 이미지에 의하여 곧 방해받는다.

 

'가장 절정에 있었던 순간'을 꿈꾸는 것이 동경이다. 그렇지만 동경의 이면에는 이미 자신이 전성기를 지났다는 씁쓸한 자각이 깔려 있다. 이처럼 과거의 절정에 사로잡혀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다.

 

현재의 삶과 직면할 때에만 우리는 새로운 삶의 절정에 이를 수 있다. 

 

 18. 멸시(Despectus) _ 사랑이라는 감정의 막다른 골목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지내다 보면, 사랑의 추억마저도 갈기갈기 찢어질 테니까.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사랑에 수반되던 '과대평가'의 감정은 이제 '멸시'의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멸시란 미움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마사는 사랑이 떠난 것이 자기 탓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고, 조지도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한때 행복했던 커플이 지금 서로를 그렇게도 미워할 수밖에. 그러니 상대방의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서로를 그렇게 할퀴면서까지 멸시할 수밖에.

 

당신은 빈칸이고 제로야.

 

우리는 특정 감정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기보다는 외부 타자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을 멸시하게 될 때, 우리는 관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으려는 비겁함을 드러내는 셈이다.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관계가 파탄나면, 그는 희생자 코스프레를 아낌없이 하게 될 것이다. 마치 부당한 일을 당한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19. 절망(Desperatio) _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치명적인 장벽

절망이란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슬픔이다. ... 공포에서 절망이 생긴다.

 

나는 한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지키기 위해서, 잔혹하게도 그는 현재의 한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흔들리던 촛불처럼 존재하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절망이 찾아온다.

 

절망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보다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더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 음주욕(Ebrietas) _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발버둥

술! 보잘것없는 사람도 위대해지도록 만드는 묘약들 가운데 이보다 더 멋진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물이다.

 

첫 잔은 현재의 남루한 모습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쓰디쓰지만, 한 잔 두 잔 들어가면 술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에게 위대했던 과거와 그 시절의 희열을 선사한다.

 

음주욕은 술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다.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 옳다면, 유진 오닐의 작품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절절한 노력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 있어라.

 

과거의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1. 과대평가(Existimatio) _ 사랑의 찬란한 아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품에 꼭 안겨 있는 것이 낫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실제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기 마련이다.

 

과대평가란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과대평가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부수 효과가 아니라 본질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대평가는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 사랑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사랑은 과대망상이라는 감정 상태가 지속될 때까지만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우려와 걱정을 무시하고 상대방을 기꺼이 과대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랑할 자격도 없는 것 아닐까?

 

 22. 호의(Favor) _ 결코 사랑일 수 없는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무장한 고급 포르노의 시절이 바로 우리의 젊은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친구가 있다면 친구를 두고 홀로 세상을 떠날 수도 없고, 진짜 애인이 있다면 애인에게 슬픔을 안기고 자살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것이 바로 젊은 시절의 우정과 사랑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친구나 애인보다는 자신을 더 아끼니까 말이다.

 

호의란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뒤틀렸음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세계에서는 뒤틀림이야말로 존재의 조건이야. 인디언이 머리에 자기 부족을 상징하는 깃털을 꽂듯이 우리는 뒤틀림을 끌어안고 있어.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사는 거야.

 

호의는 무척 위험한 감정이다. 왜일까? 첫째, 호의는 애인의 친구에 대한 사랑이기에 그 사람에 대해 무장 해제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애인과 소원해질 때 서로 주고받던 호의는 금방 애인을 배제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3. 환희(Gaudium) _ 원하는 것이 선물처럼 주어질 때의 기적

환희란 우리가 희망했던 것보다 더 좋게 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작은 소망이 정말로 실현되어, 그것도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내게 주어질 때, 바로 이 순간 환희의 감정은 우리를 사로잡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을 사랑했다니 정말일까? 아니다. 자신이 끊지 못했던 부자간의 연을 대신 끊어 준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예컨대 연인을 갖는 것은, 신을 갖는다는 뜻이리라."

 

소망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지도 않고, 혹은 기대감을 상당히 줄여 놓을 정도로 소심하고 여린 사람만이 환희라는 감정을 자주 느낄 것이다.

 

매사에 환희를 느끼고 쉽게 감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타인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강하다.

 

 24. 영광(Gloria) _ 모든 이의 선망으로 타오르는 위엄

희소한 것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존경이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영광은 우리가 타인이 칭찬할 거라고 상상하는 우리 자신의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영광을 추구하는 이면에는 다른 사람에게 당할 멸시나 경멸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인간적인 유대와 사랑을 원하는가? 공존과 공생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영광을 멀리하고 치욕을 기꺼이 감내할 일이다.

 


 

화려한 불꽃

 3부 불꽃처럼

 25. 감사(Gratia) _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품고 친절을 베풀 수밖에 없는 서러움

감사 또는 사은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사랑의 노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사의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식힐 수 있다. 아니, 식히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서둘러 상대방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친절하려고 할 때, 같은 말이지만 서로에게 감사할 때,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일정 정도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위대한 기쁨은 다른거야. 가령, 내가 가장 고귀한 명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오히려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우리 자신이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사랑 앞에서 고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에 몸을 던지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하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불행히도 더 이상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뿐. 이럴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 그래서 상대방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가급적 다 해주려고 한다. ... 지금까지의 행복에 대한 선물이자,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26. 겸손(Humilitas) _ 진정한 사랑을 위한 자기희생

돈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가치들도 모조리 돈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진 폭력성이다.

 

조르주 바타유의 말처럼 금지된 것은 금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법.

 

겸손이란 인간이 자기의 무능과 약함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겸손은 동시에 한 여자를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자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겸손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을 지배하던 해묵은 편견, 허영, 그리고 자만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겸손의 감정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만심에서 절망으로 왔다 갔다 해야만 우리는 균형 잡힌 겸손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27. 분노(Indignatio) _ 수치심이 잔인한 행동이 될 때까지

분노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친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이다.

 

"우리와 유사한 대상에게 불행을 준 사람에 대해 분노한다."

 

그가 느낀 수치심의 진정한 원인은 소중한 추억이라는 주관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자본주의 근성,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부여한 가치를 탐욕스러운 노파에게 철저히 부정되었다는 자괴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잊지 말자. 우리라는 의식이 없다면, 해악을 끼치는 강자에 대한 분노도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28. 질투(Invidia) _ 사랑이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

영혼의 교감은 전혀 시각적이지 않기에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남루한가, 우리의 결혼제도라는 것이.

 

'나'라는 말을 쓰는 습관 때문에 이 모든 다양한 '나들'이 하나로 통일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질투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

 

오히려 질투는 화자에게 이미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증발해 버린 예기치 못했던 건강한 긴장을 가지고 온다. 그에게 질투는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그녀의 내면을 읽는 긴장감을 가져다주었으니까.

 

질투의 바닥에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질투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니까.

 

 29. 적의(Ira) _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허망한 전투

적의는 미움에 의하여 우리들이 미워하는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들을 자극하는 욕망이다.

 

섹스를 나누는 사이라면, 누구든지 그 관계를 통해 서로 어떤 존재인지 가장 분명하게 이해하는 법이다. 일시적으로 성욕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남녀의 섹스는 두 사람의 전체 실존을 주고받는 행위니까 말이다.

 

"아뇨, 저는 여러 번 도망치려 했었죠. ... 하지만 이 현실의 삶을 살아낸다고 하는 것은 결국 전통적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것인 모양이네요."

 

적의라는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

 

 30. 조롱(Irrisio) _ 냉소와 연민 사이에서

인간이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움직이면서, 재미있지도 않은 일에 웃고 시답잖은 일에 기뻐하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행합일도 되지 않았으면서 인간은 지행합일이 이루어진 동물들을 열등하다고 조롱하며, 심지어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뻐기고 있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지행합일이 되어 있는 고양이 선생은 결코 일기 같은 건 쓰지 않는다. 일기란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거나, 혹은 실천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쓰는 것이니까.

 

조롱이란 우리가 경멸하는 것이 우리가 미워하는 사물 안에 있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기쁨이다.

 

주인은 무슨 일이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대단하다고 여기는 버릇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잠시 기쁨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기쁨 아닌가.

 

 31. 욕정(Libido) _ '프레스토'로 격하게 요동치는 영혼

톨스토이에 따르면 결혼의 본질은 정신적인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욕정에 있기 때문이다.

 

욕정이란 성교에 대한 욕망이나 성교에 대한 사랑이다. ... 성교에 대한 이런 욕망은 적당한 경우에도, 그리고 적당하지 않은 경우에도 보통 욕정이라고 일컬어진다.

 

섹스는 분명 우리 자신의 삶의 힘을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적 통념은 종족 보존을 위해 수행되는 섹스만이 정당한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섹스는 사랑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금욕주의적 가치관이 유교적 관습에 기독교적 관념이 결합되면서 더 강화되어 왔다.

 

다시 말하지만 섹스는 사랑의 완성이나 결실이 아니다. 그건 단지 사랑이 시작되는, 혹은 사랑이 진척되는 한 가지 계기일 뿐이다.

 

 32. 탐식(Luxuria) _ 자신의 동물성을 발견할 때

우리는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덧없는 삶처럼 변하지 않고 마치 신적인 것처럼 영원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니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물적인 요소가 끼어드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꺼리게 되는 것이다.

 

탐식이란 먹는 것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다.

 

금방 좌절하고 공허감을 느끼니, 그들은 쉽게 먹을 것에 손을 대 왔고, 또 댄다.

 

 33. 두려움(Metus) _ 과거가 불행한 자의 숙명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과거 불행에 대한 기억과 짝을 이루는 감정일 수밖에 없다.

 

두려움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과거의 불행이 집요하게도 미래에 다시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 생기는 슬픔, 즉 두려움은 바로 이렇게 우리 내면에서 탄생하여 우리의 비전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지만 에로틱한 가치를 부정하는 존재야말로 진짜 유령이 아닐까? 유령에게는 몸도 없고 애인도 없고, 당연히 온 몸을 간질이는 달콤한 애무나 키스도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진짜 유령은 편협한 종교적 가치로 퇴색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판단하는 알빙 부인이었던 셈이다.

 

동시대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광고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일 신문 광고들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라고요.

 

과거의 아픈 기억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

 

지금 내게 있는 어떤 소중한 것에 대하여 그것이 곁에 머물러 있으면 행복한 것이지만 그것이 떠나 버린다 할지라도, 그것을 상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원래 상태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

 

 34. 동정(Misericordia) _ 비참함이 비참함에 바치는 애잔한 헌사

삶이 너무나 궁핍하고 남루하면 우리는 그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근사한 꿈을 꾼다.

 

동정이란 타인의 행복을 기뻐하고 또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사랑이다.

 

동정하는 사람과 동정 받는 사람은 비슷한 신분이나 지위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나 동정하지 말지니! 충분히 우리와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동정을 표현해야 한다.

 

 35. 공손(Aversio) _ 무서운 타자에게 보내는 친절

원래 사랑이란 '부재의 고통'으로 확인되는 감정 아닌가.

 

부재의 고통에 빠진 사람은 한때는 타자와 함께 있는 행복을 충분히 느껴 봤겠지만, '존재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살아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공손함이나 온건함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은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려는 욕망이다.

 

온건한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드리우고 있는 짙은 그늘이 있다.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타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니, 적과 동지가 명확히 구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것이다.

 

 36. 미움(Odium) _ 내가 파괴되거나 네가 파괴되거나

이 세상에 둘만 있다는 경험, 그리고 완전히 자신이 현재를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 이것이 사랑하는 남녀가 섹스에 몰입하는 진정한 이유다.

 

미움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한마디로 헛소리다. 정말로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이 없거나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미움의 관계는 반드시 서로 헤어져야만 하는,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이 세상을 떠나야 끝날 수 있는, 한마디로 저주받은 관계다.

 


 

바람의 흔적

 4부 바람의 흔적

 37. 후회(Poenitentia) _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나약함

후회는 항상 이런 문법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법이다. 마치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후회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 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자신은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믿는 것만큼 거대한 착각이 어디 있겠는가.

 

일종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에만, 우리는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후회라는 감정에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유아적인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타자의 타자성을 받아들여야 후회라는 감정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38. 끌림(Propensio) _ 사랑으로 꽃필 수 없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

끌림이란 우연에 의해 기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이것이 우연적인 기쁨의 핵심적인 요소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 누가 자신이 어떤 꽃인지를 알 수 있겠는가.

 

끌림이 나의 과거 상태에 의존한다면,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는 행복하도록 스스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9. 치욕(Pudor) _ 잔인한 복수의 서막

장수가 우유부단하였으며, 대원들은 투항했으니, 더 이상의 치욕은 있을 수 없다.

 

치욕은 우리가 타인에게 비난받는다고 생각되는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실제로 타인이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이 비난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느냐의 여부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치욕이든 치욕을 가한 사람은 치욕을 받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보복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마다 역린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40. 겁(Pusillanimitas) _ 실패를 예감하는 위축된 자의식

강한 자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약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겁많은 동료가 감히 맞서는 위험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욕망을 방해당하는 그런 사람에 대해 언급된다.

 

위험하지 않는 사랑,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는 사랑이 없다는 것,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목숨을 건 모험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비알은 그래서 성숙하지 못한 남자였다. 그녀가 사랑에 너무나 겁을 먹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비알은 그녀에게 그 이상의 희망과 용기를 주었어야만 했다. 겁먹은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비알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강한 욕망의 대상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모든 희망과 절망을 염두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아주 매력적인 그리고 강렬한 대상을 만나야만 한다.

 

 41. 확신(Securitas) _ 의심의 먹구름이 걷힐 때의 상쾌함

강자의 조그만 변덕도 약자에게는 치명적인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 그러니 약자는 항상 강자의 내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확신은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기쁨이다.

 

그렇지만 확신에는 어떤 흉터, 그러니까 의심을 품었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확신과 의심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비극적 숙명에 서로 묶여 있는 셈이다.

 

확신과 의심의 동전 굴리기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끝내 사랑을 비극으로 물들이기 쉬운 법이다.

 

"나는 너를 믿어!" 정말 무서운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지혜로운 사람만이 상대방의 깊은 의심을 읽어낼 수 있다.

 

타인에 대해 확신을 갖거나 의심을 품을 이유는 없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42. 희망(Spes) _ 불확실해서 더 절절한 기다림

희망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이다.

 

잊지 말자. 나무가 있어서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희망에 따른 그 미래의 설렘이 있기에 불확실성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냥감이나 돈은 사랑을 위한 수단이지 사랑의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희망은 여전히 사람 그 자체를 향해야만 한다.

 

희망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 버리는 순간, 우리에게는 설레는 미래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43. 오만(Superbia) _ 사랑을 좀먹는 파괴적인 암세포

아가페적 사랑은 절름발이 사랑에 불과한 것이 되고, 에로스적 사랑이 완전한 사랑의 권좌에 오르게 된 셈이다.

 

오만이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려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버려야만 하는 것이 바로 오만이다.

 

"너에 대해 나는 모르는 것이 없어." 오만한 사람의 내면을 이만큼 분명히 보여 주는 표어도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의 동의어는 '알려고 한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는 오만에 빠지는 순간, 그래서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오만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44. 소심함(Timor) _ 작은 불행을 선택하는 비극

정말로 심각한 것은 그가 미래에도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나친 염려와 불안감일 것이다.

 

불안한 사랑보다는 불행한 안정에 손을 들어 준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소심함은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큰 악을 더 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이다.

 

마치 시몽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사랑을 감당할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자기 파괴의 위험을 감당하며 사랑의 모험에 과감히 뛰어들지 않으면, 순간적으로는 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편리한 안일함은 우리의 삶을 무기력하고 무겁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소심함이든 대담함이든 두 감정 모두 극단적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님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것이다.

 

 45. 쾌감(Titillatio) _ 포기할 수 없는 허무한 찬란함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몸의 쾌락이 마음의 쾌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 그러니까 쾌락은 관능적인 기쁨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행복하려면 내 사랑도 필요하지. 이 음탕하고 못되고 비뚤어진 사랑, 난삽하고 거친 사랑, 당신을 괴롭히는 사랑이.

 

지속은 우리에게 예측 가능한 시간을 주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안겨 준다. 반면 순간은 첫 만남처럼 과거 자신의 안정적인 모습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위험한 시간이다.

 

지속과 순간은 항상 서로를 배경으로 해서만 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기쁨의 정서를 쾌감이나 유쾌함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이 쾌감으로 전율할 때, 바로 그 시간이 우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그를 곁에 둘 수 없다면, 길을 지나는 모든 남자에게서 필사적으로 그를 찾을 거예요. 나는 모든 남자의 입에서 그의 맛을 찾으려 애쓸 것이고, 굶주린 늑대가 되어 울부짖으며 거리를 쏘다닐 거예요. 그이가 곧 나의 덕이에요.

 

우리의 몸은 항상 옳지만, 정신은 그릇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46. 슬픔(Tristitia) _ 비극을 예감하는 둔탁한 무거움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이다. 그러니까 순수한 기쁨이나 순수한 슬픔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고? 현재의 슬픔은 과거를 기쁨으로 치장하고, 반대로 현재의 기쁨은 과거를 슬픔으로 기억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슬픔은 인간이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와 사랑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자본주의 자체가 바로 슬픔의 기원이라는 통찰일테니까 말이다.

 

그저 기쁨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슬픔을 주는 대상이라면 단연코 그것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여기서 '변덕'이나 '변심'을 이야기하는 사회적 평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쿨'해질 필요가 있다.

 

그냥 지금 내 앞에 있는 타자가 기쁨을 주는지, 그렇지 않는지에만 집중하자.

 

 47. 수치심(Verecundia) _ 마비된 삶을 깨우는 마지막 보루

치욕이란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슬픔이다. 반면 수치심이란 치욕에 대한 공포나 소심함이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인간을 억제하는 것이다.

 

치욕은 슬픈 감정이지만 수치심은 그런 슬픈 감정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원동력이니까.

 

수치심을 느낄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행동 또한 강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의 정신과 감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자긍심과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48. 복수심(Vindicta) _ 마음을 모두 얼려 버리는 지독한 냉기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우리 시인 김수영이 1963년에 쓴 시 「죄와 벌」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복수심은 미움의 정서로 우리에게 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똑같은 미움으로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복수심의 이면에는 더 심각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의 본능도 읽힌다.

 

배신한 아내를 용서하는 것, 그것만이 마음을 얼음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쩌면 복수심이 어떤 파국을 가져오는지 하나하나 처절하게 경험해야만 빙점이 융점으로 변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조차 없다.

 


 

 에필로그

분명 감정은 영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찰나적이고 순간적인 것만은 아니다. 감정은 지속적인 것이다.

 

그러니 감정의 색채를 믿고 따르라!

 

자신의 감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우선 선과 악이라는 규범을 버리고 좋음과 나쁨이라는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서평

저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편입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에도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보편적인 틀로 자리잡고 이에 따라 감정은 멸시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잘 참아내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말이죠.

 

여담이지만, 감정이 우리가 느끼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기반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근간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성은 인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합리주의가 팽배했던 서양에서 인간 감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던 스피노자.

그리고 이를 우리에게 쉽게 풀어내어 전달하는 강신주 작가의 글은 인간 감정을 즐겁게 이리저리 굴리며 살펴보는 느낌입니다.

 

스피노자의 원문은 아니더라도 썩 마음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책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국내도서
저자 : 강신주
출판 : 민음사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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