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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자기계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6가지 방법, 설득의 심리학 1 -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 (출처: pixabay)

서문

설득의 달인들이 상대로부터 ‘네’라는 응답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책략은 수천 가지에 이르지만, 대부분의 책략이 여섯 가지 기본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범주는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갖 책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심리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나는 여섯 가지 원칙에 물질적인 이익 추구의 원칙(사람은 누구나 최소 비용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는 기본 원칙)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했다거나, 설득의 달인들이 이 기본 원칙의 위력을 경시한다는 어떤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라 할 수 있다. 나는 조사 과정에서 달인들이 (때로는 정직하게, 때로는 부정직하게) “아주 저렴하게 구입하시는 겁니다”라는 매력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물질적인 이익 추구의 원칙을 따로 다루지 않는 것은 알아두면 좋지만 굳이 자세한 설명까지는 필요 없는, 즉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는 기본적인 동기이기 때문이다.

 

 


PART 1. 설득의 무기

어미 칠면조의 양육 방법에 뭔가 묘한 점이 있다. 어미의 모든 양육 행동이 새끼 칠면조가 내는 ‘칩칩’ 소리로 촉발된다는 사실이다. 냄새나 촉감, 외모 같은 새끼의 특징들은 어미의 양육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새끼가 ‘칩칩’ 소리를 내면 어미는 새끼를 보살핀다. 새끼가 ‘칩칩’ 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미는 새끼를 무시하거나 죽이는 경우도 있다.

 

어미 칠면조의 행동은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칩칩’ 소리를 낸다는 이유만으로 천적을 품어주고, ‘칩칩’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새끼를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어미 칠면조는 마치 단 하나의 소리에 따라 모성본능이 좌지우지되는 자동인형처럼 보인다.

 

‘고정행동 패턴(fixed-action patterns)’이라 불리는 이 행동은 주로 구애나 교미 의식 같은 복잡한 행동과 관련 있다. 고정행동 패턴의 기본적인 특징은 패턴을 구성하는 행동이 항상 동일한 방식과 순서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마치 동물 내부의 어떤 기록 장치에 이런 패턴들이 적혀 있기라도 하듯이. 구애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구애 행동 기록 장치가 작동한다. 양육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양육 행동 기록 장치가 작동한다. 버튼을 누르면 적절한 기록 장치가 작동하고, 기록 장치가 작동하면 일련의 표준 행동이 뒤따른다.

 

동물은 대개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동물의 침입을 받으면 엄중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침입자를 위협하면서 필요한 경우 공격적인 행동도 감행한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도 묘한 부분이 있다. 텃세 행동을 촉발하는 것이 경쟁 상대의 존재 전체가 아니라 ‘유발 요인(trigger feature)’이라는 몇 가지 특징이기 때문이다. 유발 요인은 깃털의 색깔처럼 침입자의 존재 중 극히 일부분의 특성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수컷 울새는 진짜 울새가 아니라 자기 영역에 남아 있는 다른 수컷 울새의 가슴에서 빠진 붉은 깃털 뭉치만 보고도 경쟁자 울새한테 텃세권을 침범당한 듯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는 동물행동학자들의 실험 결과도 있다. 한편, 붉은 가슴깃털을 ‘제거한’ 완벽한 수컷 울새 모양의 박제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인간의 자동반응과 하등동물의 자동반응 사이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지만 눈에 띄는 차이점도 있다. 인간의 자동화된 행동 패턴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학습된 경향이 강하며 판에 박은 듯한 하등동물의 패턴보다 융통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반응을 일으키는 유발 요인도 더 다양하다.

 

널리 알려진 인간 행동의 원칙 중 한 가지는,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이유를 밝히면 더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이유가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Bastardi & Shafir, 2000). 랭거는 도서관 복사기 앞에 줄을 서 있는 학생들에게 “실례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지금 제가 몹시 바빠서요”라는 작은 호의를 청하는 실험에서 이러한 사실을 입증했다. 이유를 덧붙인 이런 부탁은 거의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요청받은 사람들 중 94퍼센트가 순서를 양보한 것이다. 이 성공 확률을 “실례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라고 이유를 덧붙이지 않은 채 물어본 경우의 성공 확률과 비교해보자. 이 경우에는 60퍼센트만 승낙했다.

 

차이를 유발한 것은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 전체가 아니라 문장의 첫 단어인 ‘왜냐하면’이기 때문이다. 랭거는 세 번째 실험에서 양보를 부탁하는 진짜 이유를 밝히는 대신,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를 말한 후 전혀 새로운 내용 없이 이미 밝혀진 사실을 다시 언급하도록 했다. “실례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좀 해야 하거든요.” 실험 결과는 거의 모든 사람, 약 93퍼센트의 승낙으로 나타났다. 승낙할 만한 어떤 실제적인 이유나 새로운 정보가 없는데도 말이다.

 

시바스 리갈은 경영진이 제품 가격을 경쟁사들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브랜드였다. 그런데 제품 판매 가격을 올리자마자 제품 자체는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도 판매가 급등했다(Aaker, 1991). 최근 실시한 뇌 스캔 연구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피험자들은 같은 와인을 마시면서도 5달러짜리라고 생각할 때보다 45달러짜리라고 생각할때 더 맛있다고 평가했을 뿐 아니라 쾌락과 관련된 뇌 중추의 활성화 수치도 올라갔다(Plassmann et al., 2008).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 중에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규칙뿐 아니라 ‘싼 게 비지떡’이라는 규칙도 존재한다. ‘싸다(cheap)’라는 영어 단어에는 가격이 낮다는 의미와 더불어 열등하다는 의미도 있다.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했겠지만, 오직 터키석 장신구의 가격에만 반응한 여행객들은 사실상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선택한 셈이다. 터키석 장신구의 가치를 보여주는 모든 특징을 철저하게 파악해 선택 가능한 여러 구매 결정 방식을 탐색하는 대신, 제품의 품질과 관련이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단 하나의 특징에만 의존하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가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믿었다.

 

단 하루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건, 상황의 모든 측면을 전부 인식하고 철저히 분석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만한 시간도, 에너지도, 능력도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고정관념이나 경험 법칙 등을 사용해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으로 대상을 분류하고,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날 때에는 특별한 사고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징후들을 보면 앞으로는 이런 고정관념에 더욱더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는 삶의 자극에 대처하려면 지름길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매를 유발하는 할인 쿠폰 예시 (출처: Google)

구매에 관한 기본적인 유발 요인 중 소비자들이 자동적이고 맹목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 예로 ‘할인 쿠폰’을 들 수 있다(Zimmatore, 1983). 어느 타이어 회사에서 인쇄 오류로 아무런 할인 혜택도 제공하지 않는 쿠폰을 우편 발송하자 소비자들은 상당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정상 쿠폰을 받았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판단의 휴리스틱스(heuristics, 모든 경우를 고려하는 대신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발견한 편리한 기준에 따라 일부만 고려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옮긴이)’라는 이 지름길은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원칙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고 과정을 단순화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효과를 발휘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신중하게 분석할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 사람들은 통제반응을 더 많이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훨씬 더 쉽고 간편한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다(Epley & Gilovich, 2006; Petty & Wegener, 1999).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모든 학생은 졸업 전에 반드시 종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새로운 학사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녹음해 들려주었다. 자신이 졸업하기 전인 다음 해부터 당장 종합시험이 실시된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감정적인 동요를 보였다. 당연히 발언의 내용도 주의 깊게 분석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이 졸업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종합시험이 실시된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감정적인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장의 타당성을 주의 깊게 검토할 의지를 찾을 수 없음은 당연했다. 연구 결과는 간단했다. 피험자들은 개인적으로 자신과 관련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주로 교육 문제에 관한 화자의 전문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고, 이 경우 주장의 타당성과 상관없이 ‘전문가의 말은 진실’이라는 규칙을 적용했다. 반면에 개인적으로 자신과 관련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화자의 전문성과 상관없이 주로 주장의 타당성이 판단 기준이 되었다.

 

그럴 만한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에만 심사숙고를 거친 통제반응을 보인다던 말을 기억하라. 요즘처럼 빠르고 복잡한 사회에서는 자신과 관련 있는 중요한 주제조차도 심사숙고해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Cohen, 1978; Milgram, 1970). 고민해야 할 주제는 복잡하고, 시간도 촉박하며, 주변은 산만한데다 감정적으로는 흥분해 있고, 정신적으로 피곤하기까지 하면 조리 있게 사고할 여유가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라면 중요한 주제든 아니든, 지름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거짓 짝짓기 신호에 현혹되는 수컷들의 성향은 인간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비엔나 대학교 생물학자인 아스트리드 쥐에트(Astrid Juette)와 카를 그래머(Karl Grammer)는 젊은 남성 피험자들을 여성의 질 분비물 향기를 모방한 코퓰린(copulins)이라는 휘발성 화학물질에 노출시킨 다음 여성의 얼굴을 보고 호감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코퓰린에 노출된 남성은 여성의 신체적 매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높은 호감을 표시했다(『여성을 위하여』, 1999).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이 생존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나름의 모방 기술을 발달시켰다. 가장 원시적인 병원균도 예외가 아니다. 영리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숙주에게 유익한 호르몬이나 영양 성분의 특징을 모방해 건강한 숙주 세포에 접근한다. 그러면 건강한 세포는 순진하게도 광견병이나 전염성 단핵증, 감기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균들을 열심히 세포 속으로 끌어들인다(Goodenough, 1991).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주짓수 (출처: Freepik)

‘주짓수(柔術)’라는 일본 무술은 적수를 상대할 때 자신의 힘은 되도록 적게 사용하고 대신 중력이나 지렛대 효과, 가속도, 관성 등 자연법칙에 내재된 힘을 이용한다. 따라서 자연법칙에 숨은 힘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방법만 배운다면 힘이 약한 여자도 신체적으로 훨씬 강한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동화된 반응을 이끌어내는 설득의 무기도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무기들을 사용해 목표물을 공략할 뿐 자기 힘은 거의 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또 하나의 엄청난 부가 이득이 존재하는데, 바로 상대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상대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심지어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 스스로도 어떤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의 계획에 따라 자신이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에 따라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인식과 관련한 원칙 중에 ‘대조 원리(contrast principle)’라는 것이 있다. 두 개의 대상을 차례로 제시할 때 둘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원리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 번째 대상이 첫 번째 대상과 차이가 심할 경우에는 그 차이가 실제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먼저 가벼운 물체를 들었다가 이어서 무거운 물체를 들게 되면, 무거운 물체만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낀다. 대조 원리는 정신물리학(psychophysics, 인지현상과 자극의 물리적 성질과의 관계를 조사하는 학문 분야-옮긴이) 분야에서 정립된 원리로 무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인지 과정에 적용 가능하다. 모임에서 매우 매력적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변변찮은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두 번째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먼저 한 손은 차가운 물, 나머지 한 손은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두 손을 모두 꺼내 동시에 상온의 물에 담근다. 학생들의 표정엔 즉시 어리둥절하면서도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오른다. 두 손을 모두 상온의 물에 담그고 있는데도 차가운 물에 담갔던 손은 마치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 뜨거운 물에 담갔던 손은 마치 차가운 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실험의 핵심은 똑같은 것, 즉 상온의 물도 그 직전에 일어난 사건에 따라 매우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조 원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조작한다는 느낌을 상대방이 전혀 알 수 없게 하면서 설득에 성공할 수 있다. 의류 소매상인들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한 남자가 고급 남성복 매장에 들러 스웨터 하나와 쓰리피스 양복 한 벌을 찾는다고 해보자. 판매사원인 당신이 가장 높은 매상을 올리고 싶다면 어떤 제품부터 권하겠는가? 의류 매장에서는 가장 비싼 제품부터 권하라고 직원들을 가르친다. 일반 상식과 어긋나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손님이 값비싼 양복을 구매했다면 스웨터에다 돈을 더 쓰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판매 전문가들인 의류 매장 직원들은 대조 원리를 고려해 행동한다. 비싼 값을 치르고 고급 양복을 구입한 후라면 아무리 비싼 스웨터를 내놓아도 양복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진다. 새 양복과 어울리는 셔츠나 구두, 허리띠 등을 구매하고자 하는 손님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이처럼 일반 상식의 관점과는 반대로 대조 원리의 효과를 나타내는 증거는 많다.

 

저가의 제품을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고가의 제품을 제시하면 고가의 제품이 더욱 비싸게 느껴진다. 이것은 판매사원에게 결코 바람직한 결과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한 양동이에 담긴 똑같은 물이 먼저 손을 담갔던 물의 온도에 따라 더 뜨겁거나 더 차갑게 느껴지듯이, 똑같은 제품 가격도 먼저 제시된 제품의 가격에 따라 더 비싸거나 더 싸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필은 그런 형편없는 매물들을 일종의 ‘밑밥’이라고 불렀다. 회사의 매물 목록에는 거의 쓰러져 가다시피 하는 낡은 주택이 항상 한두 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집들은 고객에게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 진짜 판매할 집들과 대조 효과를 만들기 위해 보여줄 목적으로 보유한 상품이었다. 모든 영업사원이 이 밑밥 매물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필은 반드시 사용했다. 필은 형편없는 집을 먼저 보여준 다음 판매하고 싶은 괜찮은 집을 보여줬을 때 고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고 말했다. “흉물스러운 집을 한두 채 보고 나면 평범한 집도 굉장히 훌륭해 보이게 마련이지.”

 

자동차 판매상들도 대조 원리를 사용한다. 그들은 자동차 협상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는 이런저런 옵션 설치를 권하지 않는다. 수만 달러짜리 거래를 마무리 짓고 나면 CD플레이어 업그레이드 같은 사소한 옵션을 위해 수백 달러 정도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은 비교적 하찮게 느껴진다. 판매상들이 연달아 권유하는 차 유리 썬팅이나 타이어 업그레이드, 각종 액세서리 장착 등을 위한 추가 비용도 마찬가지다. 비결은 각종 옵션들을 하나씩 따로따로 제시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적은 비용을 이미 결정된 자동차 본체 가격과 비교해 더욱 하찮아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요약

  • ‘고정행동 패턴’이라 불리는 이런 기계적 행동들은, ‘누르면, 작동하는’ 인간의 자동화된 반응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간과 동물의 이와 같은 자동행동 패턴들은 주어진 상황과 관련이 있는 단 하나의 요인에 따라 촉발되는 경향이 있다. ‘유발 요인’이라고도 하는 이 하나의 요인은 주어진 모든 정보를 철저하게 심사숙고하지 않고도 올바른 행동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가치 있는 역할을 한다.
  • 지름길 반응의 장점은 효율성과 경제성이다. 대체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발 요인에 자동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생존에 필수적인 시간과 에너지, 사고 능력 등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어리석고 치명적인 실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접근 가능한 정보 중 오직 하나의 정보(아무리 예측 능력이 뛰어난 정보라 하더라도)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PART 2. 상호성의 원칙

몇 년 전 한 대학 교수가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택한 다음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발송한 것이다. 모종의 반응을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결과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교수를 만나본 적이 없음은 물론, 이름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답장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답장을 보내온 사람들 중 정체불명인 교수에게 신원을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그들은 카드를 받으면 무조건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자동화된 반응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Kunz & Woolcott, 1976).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뭔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누군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면 우리도 호의로 갚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을 받으면 우리도 상대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선물을 해야 하며, 누군가 우리를 파티에 초대하면 우리도 파티를 열어 상대를 초대해야 한다. 상호성의 원칙은 타인의 호의나 선물, 초대 등이 미래에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부채의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당신께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much obliged)’라는 말이 ‘감사합니다(thank you)’와 동의어로 쓰일 정도이며, 이런 현상은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권(예를 들어 ‘감사합니다’라는 의미의 포루투갈어는 ‘obrigado’이다)도 마찬가지다. 고맙다는 뜻을 지닌 일본어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은 미래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하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심을 상호성의 체계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이 “의무감으로 이루어진 명예로운 네트워크 안에서” 식량과 기술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Leakey & Lewin, 1978). 문화인류학자들은 이 ‘부채의 그물망’을 인류만의 독특한 적응 메커니즘으로 평가하며, 각 개인을 대단히 효율적인 집단의 일원으로 만드는 분업,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 상호의존성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Ridley, 1997; Tiger& Fox, 1989).

 

문화인류학자인 타이거와 폭스는 사회 발전을 이루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바로 미래지향적 의무감이라고 주장한다(Ridley, 1997;Tiger & Fox, 1989). 인간 사회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미래지향적 의무감을 공유함으로써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즉 미래지향적 의무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또한 채택되어 있는 인간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안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에너지, 보살핌 등의 호의를 기꺼이 베푸는데, 이러한 호의는 나중에 자신에게 호의가 필요할 때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렇듯 원조와 무상제공, 방어와 거래 등의 세련된 협력 체계가 가능해지면서 사회 전체에 엄청난 이익이 발생했고, 그러므로 인류 문명에 이토록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준 상호성의 원칙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 내면에 깊이 새겨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무감이 미래지향적이기는 하지만 지속 기간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비교적 작은 호의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답하려는 마음이 약해진다(Burger et al., 1997; Flynn, 2002).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대단한 선물을 받았을 때에는 의무감이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

 

약간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상호성의 원칙은 자신이 보여준 행동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결국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채의식을 유발하는 선물 (출처: Freepik)

상호성의 작동 방식

인간 사회는 상호성의 원칙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상호성의 원칙을 신뢰하고 따르도록 확실히 훈련받고 있다. 우리는 모두 상호성의 원칙을 어기지 말라고 배웠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 제재와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받기만 하고 내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파렴치하고 배은망덕한 인간, 무임 승차자 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심리학자 데니스 레건(Dennis Regan, 1971)이 실시한 실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피험자를 다른 피험자 한 명과 함께 미술 작품 몇 점을 평가하도록 하는 ‘미술 감상’ 실험에 참가시켰다. 다른 한 명의 피험자(‘조’라고 하자)는 동료 피험자인 척했지만 사실 레건 박사의 조수였다. 실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조는 요청하지도 않은 작은 호의를 진짜 피험자에게 베풀었다. 실험 도중 휴식 시간에 조는 몇 분 동안 실험실을 나갔다가 콜라 두 병을 들고 들어와 한 병은 자신이 마시고 나머지 한 병은 피험자에게 건네주면서 “실험자한테 콜라 좀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같이 마시려고 한 병 더 사왔어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조는 피험자에게 아무런 호의도 베풀지 않았다. 휴식 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밖에 조의 모든 행동은 첫 번째 실험과 동일했다.

 

조는 피험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당첨되면 신차를 받을 수 있는 복권을 자신이 지금 판매 중인데, 복권 최다 판매자는 상금으로 50달러를 받게 되어 있으니 한 장에 25센트짜리 복권을 구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장만 사주셔도 됩니다.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요.”

 

조는 당연히 처음에 콜라를 건네며 호의를 베풀었던 피험자에게 더 많은 복권을 팔았다. 조에게 뭔가 신세를 졌다는 생각을 한 첫 번째 피험자들은 아무런 호의도 제공받지 못한 두 번째 피험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복권을 구매했다.

 

압도적인 위력

상호성이 다른 사람의 승낙을 얻어내는 효과적인 도구로 이용되는 이유는 상호성의 원칙이 지닌 압도적인 위력 때문이다. 그 힘은 몹시 강력해서 부채의식 같은 감정이 없다면 단박에 거절당할 법한 요청에도 ‘네’라는 응답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

 

레건의 실험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결과는, 조한테 콜라를 받은 피험자의 경우 호감도와 승낙 사이의 정비례 관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단 조에게 신세를 지고 나자 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이 없었다. 피험자는 조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고, 실제로 보답을 했다. 조를 싫어한다고 답했던 피험자도 조를 좋아한다고 답했던 피험자와 동일한 분량의 복권을 구매했다. 상호성의 원칙은 매우 강력해서 평소라면 승낙 여부에 영향을 미쳤을 상대에 대한 호감이라는 요인마저 압도해버렸던 것이다.

 

요청을 하기 전에 목표 대상에게 ‘선물’, 주로 책(대개 『바가바드 기타』)이나 협회의 정기 간행물인 《백 투 갓헤드》, 그리고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꽃 한 송이 등을 나눠준 점이 달랐다. 회원들은 무방비 상태로 지나가던 행인 앞에 갑자기 등장해 꽃 한 송이를 손에 쥐어주거나 옷깃에 꽂아주었다. 상대방이 극구 사양하면 “아닙니다. 저희가 드리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하며 절대로 꽃을 돌려받지 않았다. 회원들은 이런 식으로 먼저 상호성의 원칙이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을 조성한 다음 모금을 요청하곤 했다. ‘먼저 베풀고 나중에 얻어내는’ 하레 크리슈나 협회의 전략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덕분에 협회는 대규모 기금 조성은 물론, 미국 전역과 해외에 걸쳐 사원과 사업체, 주택, 센터 321시설 등을 소유하게 되었다.

 

한 번이라도 크리슈나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는 여행객들은 공항이나 기차역 등지에서 법복을 걸친 크리슈나 협회 모금원들을 최대한 경계하면서 ‘선물’ 받을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 결국 크리슈나의 재정 상태는 다시 극도로 악화되었다. 북미에서만 30퍼센트의 사원이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사원에서 일하는 추종자도 5,000명에서 800명 정도로 급감했다.

 

설문 조사원들은 설문지를 발송할 때 소액 현금(1달러 은화나 5달러 수표 등)을 선물로 넣어 보내면, 동일한 금액을 설문 응답 이후 보답으로 제공하는 경우보다 설문 응답 확률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Singer, Van Holwyk & Maher, 2000; Warriner, Goyder, Gjertsen, Horner, & McSpurren, 1996). 한 예로 어느 연구에서는 보험 관련 설문지에 5달러짜리 수표를 ‘선물’로 동봉해 보낼 경우 설문 응답 후 보답으로 50달러를 지급하는 경우보다 두 배나 높은 효과를 얻었다(James & Bolstein, 1992).

 

정치가의 착각 또는 은폐

고위 선출직 공무원들이 서로 호의를 주고받는 ‘정실주의’를 통해 정치판을 부도덕한 동료애로 오염시키고 있다. 어떤 법안에 대한 투표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 노선과 어긋난 표를 던지는 의원이 있다면 대부분 해당 법안의 발안자에게 신세를 갚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후원자들이 기대하는 ‘기브 앤 테이크’의 직접적인 증거를 원한다면, 선거운동자금개혁과 관련한 의회 청문회에서 사업가 로저 탐라즈(Roger Tamraz)의 뻔뻔스러운 자백을 들어보면 된다. 30만 달러의 후원금에 대해 적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번에는 60만 달러를 기부할 생각입니다.”

 

2002년 총선 기간 동안 여섯 가지 핵심 사안에 대해 이익집단의 자금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미국 의회 의원들을 조사한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선거운동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한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확률이 일곱 배나 높았다. 실제 그 이익집단은 83퍼센트에 달하는 법안 통과율을 보였다(Salant, 2003). 선출직 및 임명직 공무원들은 종종 자신은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 예를 들어 주차 규정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호성의 원칙에 관련해서 이런 오만함을 보였다가는 비웃음을 사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공짜 샘플은 없다

공짜 샘플 판촉은 대부분 잠재 고객에게 관련 제품의 일부를 미리 제공해 선호도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중에게 제품의 장점을 소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공짜 샘플의 진짜 매력은, 이 역시 일종의 ‘선물’이다 보니 상호성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공짜 샘플로 판촉을 하는 업체들은 마치 주짓수 고수들처럼 제품 홍보에만 목적이 있는 척하면서 사람들에게 공짜 선물이 주는 자연스러운 부채의식을 심는다.

 

이런 마케팅 전략을 보다 효과적으로 변형시킨 사례가 밴스 패커드(Vance Packard)의 『숨은 설득자(Hidden Persuader)』(1957)에 실려 있는데, 인디애나 주의 어느 슈퍼마켓 주인은 치즈를 덩어리째 밖에 내놓고 고객들에게 공짜 샘플을 마음대로 잘라가게 하는 방법으로 몇 시간 만에 1,000파운드짜리 치즈를 전부 팔아치웠다고 한다.

 

대외비인 ‘암웨이 판매 매뉴얼’을 보면, ‘판매사원이 어떤 비용이나 의무사항 없이 24시간이나 48시간 또는 72시간 동안’ 벅을 고객에게 맡겨놓고, ‘일단 한번 사용해보시라고 말하면 거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시험 사용 기간이 끝나면 암웨이 판매사원이 고객을 방문해 샘플 중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주문받는다.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제공된 샘플을 전부 다 사용할 수 있는 고객은 거의 없으므로 판매사원은 남은 제품을 수거해 다음 잠재 고객에게 다시 제공했다. 암웨이 판매사원 대다수가 자신의 판매 구역 안에서 한 번에 여러 개의 벅을 회전시킨다.

 

원치 않는 호의도 갚아야 한다

상호성의 원칙에는 그 막강한 위력 외에도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원치 않는 호의를 받았을 때도 부채의식이 촉발된다는 점이다(Pease & Gilin, 2000). 상호성의 원칙은 상대에게 받은 대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요청한 것을 제공받았을 때에만 부채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상호성 원칙의 사회적 목적을 잠시 생각해보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상호성 원칙의 성립 목적은 사람들 사이에 호혜적 관계의 발전을 촉진해 누군가의 손실에 대한 두려움 없이 호혜적 관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상호성 원칙의 목적이 그러하다면, 상대방의 요청 없이도 제공하는 첫 번째 호의에도 부채의식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호혜적 관계는 그러한 관계를 조장하는 사회에 상당한 이익이므로 사회에는 상호성 원칙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는 강한 압력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저명한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954)가 선물 교환과 관련해 인류 문화에 존재하는 사회적 압력을 설명하면서, 세상에는 ‘줄 의무’와 ‘받을 의무’, ‘갚을 의무’가 있다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갚을 의무가 상호성 원칙의 핵심이라면, 받을 의무는 상호성 원칙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받을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빚을 지고 싶은 사람만 선택해 빚을 질 수 없다. 결국 호혜적 관계의 주도권은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조는 자발적으로 실험실을 나가 자신이 마실 콜라와 피험자에게 줄 콜라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러나 피험자는 콜라를 거절하지 않았다. 조의 호의를 거절하는 일이 왜 곤란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조는 콜라 구입에 이미 돈을 썼다. 둘째, 실험이 잠시 중단되어 조 자신이 콜라 한 병을 마시며 쉬는 상황에서 동료 피험자에게 콜라 한 병을 권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호의였다. 셋째, 그런 상황에서 피험자가 조의 배려를 거절한다면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콜라를 받아 마신 피험자는 조에게 부채의식이 생겼고, 조가 복권 구매를 부탁하는 순간 이 부채의식은 더욱 분명해졌다. 여기서 나타난 불균형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 실험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전부 조의 몫이었다. 맨 처음 제공한 호의의 형태도, 이후 보답의 형태도 조가 선택했다.

 

상품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해당 단체에 어떤 이득이 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원하지 않는 선물이라도 일단 선물에 대해서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문화적 압력이 있지만, 원하지 않는 ‘상품’을 억지로 구매해야 한다는 압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음 날이 되자 나의 불안은 부모님한테까지 옮고 말았습니다. 상호성의 원칙과 남의 호의를 갚지 못한 데서 비롯된 불편한 감정은 우리 가족에게 약간의 노이로제 증상까지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꽃이나 선물이라도 보내려고 그 간호사의 소재를 수소문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녀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 가족은 그녀가 어떤 부탁을 하든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빚진 느낌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없자 어머니는 남아 있는 유일한 방법에 의지했습니다. 바로 천국에서라도 그녀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달라고 추수감사절 만찬 식탁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상호성의 원칙은 처음에 직접 호의를 주고받은 사람들한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속해 있는 집단 구성원한테까지 확대 적용된다. 남학생이 받은 도움 때문에 가족 전체가 빚진 기분을 느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가능하기만 했다면 간호사뿐 아니라 간호사의 가족을 도와서라도 빚을 갚으려 했을 것이다(Goldstein et al., 2007).

 

상호성의 원칙은 불공평한 교환을 일으킨다

서로간의 공평한 교환을 촉진하기 위해 발전한 상호성의 원칙이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불공평한 결과를 초래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든 그와 유사한 행동으로 갚아야 한다. 호의는 호의로 보답해야 한다. 호의를 무시나 공격으로 갚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규칙에는 융통성이 발휘될 여지가 크다. 작은 호의로 비롯된 의무감이 훨씬 더 큰 호의에 대한 승낙을 얻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처음 호의를 제공하는 사람이 첫 번째 호의는 물론 보답의 형태까지 결정할 수 있는 까닭에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불공평한 교환을 유도할 수 있다.

 

마음의 짐이 되는 부채 의식 (출처: iStock)

어떻게 처음 받은 작은 호의 하나가 훨씬 더 큰 보답을 일으킨 것일까?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부채의식이 상당히 불쾌한 감정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빚진 느낌은 싫어한다.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빨리 갚아버리고 싶어 한다. 이런 기분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호혜적 관계는 인간 사회에 매우 필수적이라 우리는 누구한테 신세를 지면 불편한 느낌이 들게끔 조건화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호의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호혜적 관계가 붕괴되면서 상대방은 다시는 먼저 호의를 베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사회에 전혀 유익하지 않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갚아야 할 의무가 있을 때에는 불안한 느낌이 들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불편한 부채의식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큰 호의를 베푸는 일까지 기꺼이 승낙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상호성 원칙을 어겨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기만 하고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는다. 물론 예외적으로 능력이나 상황이 열악해 호의를 받기만 해도 괜찮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상호성 원칙의 명령을 어기는 사람은 사회적 반감을 피할 수 없다(Wedekind & Milinski, 2000).

 

비교문화적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흥미롭게도 상호성의 원칙을 역방향으로 위배한 사람, 즉 먼저 호의를 베푼 다음 상대방에게 보답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상당한 반감을 보인다고 한다. 미국, 스웨덴, 일본 3개국에서 모두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Gergen, Ellsworth, Maslach, & Seipel, 1975).

 

내적인 불쾌감과 외적인 수치심이 결합하면 상당한 심리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 심리적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호성 원칙에 따라 종종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내주는 사람들의 행동도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보답할 수 없는 처지일 때는 꼭 필요한 부탁조차 하지 않으려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De Paulo, Nadler, & Fisher, 1983; Greenberg & Shapiro. 1971; Riley & Eckenrode, 1986). 차라리 물질적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심리적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 같은 장기적인 관계에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상호성은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런 ‘공유적’ 관계에서는(Clark & Mills, 1979; Mills & Clark, 1982), 상대에게 뭔가 필요할 때 자발적으로 그것을 제공하려는 형태의 상호성만 나타난다(Clark, Mills, & Corcoran, 1989). 이런 유형의 관계에서는 상호성 원칙을 적용한다 해도 누가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내놓았는지 계산할 필요가 없으며, 양쪽 모두 일반적인 규칙을 준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Clark, 1984; Clark & Waddell, 1985; Clark,Mills, & Powell, 1986). 그렇지만 아무리 친구 사이일지라도 불공평한 교환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 불만이 생긴다.

 

 

상호 양보

현재 6년째 그 부장님을 모시고 있는데, 저도 전임자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부장님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우리 가족에게 선물을 보내주고 제 생일도 꼭 챙겨줍니다. 저는 제 직급에서 최고 급여를 받은 지 2년이 지났고, 업무 특성상 승진 가능성도 없습니다. 현재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이직하는 방법뿐입니다. 그러나 부서를 옮기는 것도, 이직하는 것도 망설여집니다. 부장님이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분이 은퇴한 뒤에나 이직을 고려해볼 생각입니다. 부장님이 그동안 제게 너무 잘해주었기 때문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한 사람은 같은 행동으로 보답받을 자격이 생긴다. 앞에서 보았듯이 다른 사람의 호의에 우리도 호의로 보답해야 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양보에 우리도 양보로 보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제로 그런 양보가 일어났다. 소년이 큰 부탁을 철회하고 작은 부탁으로 바꾸자 나도 거절에서 승낙으로 입장을 바꾸고 만 것이다. 입장권에도, 초콜릿 바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초콜릿 바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이스카우트 소년이 한 발 물러나자,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으로 나 역시 한 발 물러났다. 물론 상대방의 양보에 양보로 보답하려는 경향은 모든 상황, 모든 사람에 적용될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다.

 

상호성의 원칙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회 구성원의 상호 양보를 이끌어낸다. 첫 번째 방법은 상당히 분명하다. 먼저 양보를 받은 사람한테 그에 상응하는 양보로 보답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첫 번째 방법만큼 명확하진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양보를 받은 사람은 양보로 보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사람들은 부담 없이 ‘먼저’ 양보를 함으로써 사회에 유익한 교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양보에 양보로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가 없다면 과연 누가 먼저 희생하려 들겠는가?

 

 

'거절 후 양보' 전략

상호성의 원칙은 타협 과정을 지배하기 때문에, ‘먼저’ 양보를 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설득 기술이 될 수 있다. 이 간단한 전략을 ‘거절 후 양보(rejection-then-retreat)’ 전략이라고 하며, 흔히 ‘문전박대(door-in-the-face)’ 전략이라고도 한다. 당신이 나한테 어떤 부탁을 하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승낙 확률을 높이는 한 가지 방법은 내가 틀림없이 거절할 만한 무리한 부탁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절을 당하면, 그제야 원래 염두에 두었던 작은 부탁을 한다. 부탁의 순서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나는 당신이 두 번째 내놓은 작은 부탁을 나에 대한 양보로 인식하고 나도 그에 걸맞은 양보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결국 당신의 두 번째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교 연구진의 ‘거절 후 양보’ 전략과 관련한 연구에 따르면, 처음에 제시하는 요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Schwarzwald, Raz, & Zvibel, 1979). 이런 경우 처음에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거래에 성실하게 임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매우 비현실적인 요구를 먼저 제시한 다음 한 발 물러서는 행동은 진짜 양보처럼 보이지 않으며, 보답도 받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정말 뛰어난 협상가는 첫 번째 요구를 적당히 과장해 제시한 후, 상대와 작은 양보와 대안을 주고받다가 결국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원래 원하던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Thompson, 1990).

 

나는 방문판매 업체들을 조사하던 중 또 다른 형태의 ‘거절 후 양보’ 전략을 발견했다. 이 업체들은 주도면밀하기보다는 임기응변적인 전략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방문판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제품 판매다. 그런데 내가 조사한 방문판매 업체의 훈련 프로그램들이 하나같이 두 번째로 중요한 목표로 제시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잠재 고객에게서 친구나 친척, 이웃 등 접근을 시도해볼 수 있는 지인들을 추천받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끈질긴 영업사원한테 절대 지인의 이름을 넘겨주지 않을 사람들이 방문판매원이 제품 구입 권유에서 한 발 양보한다는 듯 이런 부탁을 해오면 큰 고민 없이 지인들의 이름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호 양보와 대조 원리,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미스터리

큰 부탁을 먼저 하고 나중에 작은 부탁을 하면 대조 원리에 따라 작은 부탁이 큰 부탁에 비해 더 작게 느껴진다. 5달러를 빌리고 싶을 때는 먼저 10달러를 빌려달라고 부탁하면 5달러가 실제보다 적은 금액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 이 전략의 장점 중 한 가지는 먼저 10달러를 부탁했다가 한 발 물러나 5달러를 부탁하면서 상호성의 원칙과 대조 원리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워터게이트 조사위원회에서 리디의 계획이 통과된 회의와 관련해서 가장 믿을 만한 증언이라고 평가한 제프 매그루더의 증언을 검토해보면,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매그루더의 보고(1974)에 따르면, “우리 중 누구도 리디의 계획에 적극 찬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에서 시작했기에 25만 달러 정도면 수용 가능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리디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기 곤란했던 것이다.” 미첼은 “‘좋아, 100만 달러의 1/4만 내주고, 뭘 들고 오나 보자’라는 의미로, 리디에게 뭔가 작은 것을 승인해줘야 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리디의 첫 제안이 워낙 어마어마했던 탓에 ‘100만 달러의 1/4’은 리디의 양보에 대한 보답으로 제공할 수 있는 ‘뭔가 작은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진퇴양난

‘거절 후 양보’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앞의 두 요인 같은 심리 원칙이 아니다. 오히려 부탁 순서와 관련이 있는 순전히 구조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5달러를 빌려야 할 상황을 가정해보자. 나는 처음에 10달러를 부탁해도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 상대가 허락한다면 처음 기대했던 5달러의 두 배를 빌릴 수 있고, 상대가 거절한다 해도 한 발 물러나 원래 원했던 5달러를 부탁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상호성 원칙과 대조 원리에 따른 부탁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부탁을 수락한 희생자들이 분노할지도 모른다. 희생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 첫째, 희생자가 상대한테 구두로 허락한 내용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희생자가 상대를 불신하게 되어 앞으로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이런 결과가 자주 벌어진다면, 부탁하는 사람은 ‘거절 후 양보’ 전략의 사용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거절 후 양보’ 전략의 희생자들에게서 이런 부정적 반응이 증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헌혈 장기 약정

예상대로 무리한 부탁(지역 정신병원에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최소 2년 동안 무료 봉사)을 먼저 제시한 다음 한 발 양보해 비교적 쉬운 부탁을 제시한 경우(76퍼센트)가 처음부터 쉬운 부탁만 제시한 경우(29퍼센트)보다 구두 승낙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러나 연구진은 과연 ‘자원’ 봉사를 약속한 희생자들이 약속에 따라 실제로 봉사 현장에 나타날까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실험 결과, 약속의 실천에서도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한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85퍼센트 대 50퍼센트).

 

한 집단의 피험자들에게는 먼저 최소 3년 동안 매 6주마다 혈액 0.5리터를 기증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후 한 발 양보해 일단 0.5리터만 기증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집단의 피험자들에게는 처음부터 0.5리터의 혈액만 기증해달라고 부탁했다. 연구진은 헌혈을 약속하고 헌혈 센터를 방문한 피험자들에게 혹시 필요한 경우 재헌혈을 요청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해 헌혈 승낙을 받아낸 학생들 거의 대부분(84퍼센트) 재헌혈에 동의한 반면, 단번에 승낙을 받아낸 학생들은 절반도 안 되는 수(43퍼센트)만 재헌혈에 동의했다. 추가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거절 후 양보’ 전략이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분 좋은 부작용

이상하게도 ‘거절 후 양보’ 전략에 넘어간 사람들은 부탁을 수락할 뿐 아니라 약속도 성실히 이행하고, 심지어 상대의 추가 부탁까지 쉽게 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전략의 어떤 점 때문에 한 번 승낙으로도 모자라 추가 부탁도 계속 승낙하는 걸까? 그 답은 이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양보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양보 행동에는 우리가 아직 살펴보지 않은 두 가지 긍정적인 부작용이 따르는데, 합의 사항에 대한 ‘책임감’과 높은 ‘만족도’다. 희생자들이 약속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추가 부탁까지 수락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기분 좋은 부작용 때문이다.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하고 ‘협상 상대’와 마주 앉아 돈의 배분 방식을 협상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서로 합의하지 못하면 아무도 돈을 가질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피험자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사실 ‘협상 상대’는 피험자와 세 가지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라고 지시를 받은 연구진의 일원이었다. 협상 상대는 첫 번째 집단을 상대로 처음부터 돈을 혼자 다 갖겠다는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협상 내내 자기 입장만 고집했다. 두 번째 집단을 상대로는 적당히 유리한 수준으로 요구하면서 이번에도 역시 협상 내내 자기 입장만 고집했다. 세 번째 집단을 상대로는 처음에는 상당히 무리한 요구로 시작했지만,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점점 자기 입장을 철회하고 합리적인 요구로 물러났다.

 

책임감

협상 상대가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했을 때 피험자들의 승낙 확률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피험자들은 합의사항 이행에 대해서도 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 결과에 적용해보면,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했을 때 희생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약속을 더 잘 지키는 불가사의한 현상도 이해가 가능해진다. 합의사항에 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합의사항을 이행할 확률도 높을 테니 말이다.

 

만족도

피험자들은 협상 상대가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했을 때 가장 많은 돈을 내줬으면서도 합의사항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상대의 양보를 통해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거절 후 양보’ 전략의 두 번째 불가사의한 현상, 즉 희생자가 추가 요구를 기꺼이 승낙하는 현상도 이해가 가능하다. ‘거절 후 양보’ 전략은 양보를 통해 승낙을 얻어내는 전략이기에 희생자가 합의사항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 기존 합의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유사한 합의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상호성의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호의와 설득 전략을 구분하라

상대가 먼저 제공하는 호의나 양보를 무조건 거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상대의 호의나 양보를 처음 접할 때 그것이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하려는 첫 단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다. 항상 최악의 경우만 가정하고 무조건 거절한다면,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할 의도가 전혀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선의의 호의, 양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변엔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하려는 사람보다 진정으로 마음이 관대하고 상호성의 원칙을 공평하게 따르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의 선의를 계속 거절하는 행동은 모욕이다. 그리고 결국은 사회적 갈등과 고립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호의와 양보를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전략이 아니다.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라

비용이 들지 않는 정보 제공 전략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한 예로 해충 박멸 회사들은 고객들이 해충 무료진단을 받고 나면 필요한 경우 무료진단을 받은 회사에 해충 박멸 작업을 의뢰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고객들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에 작업을 맡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조사원의 주요 방문 목적이 값비싼 경보장치를 판매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상황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조사원한테 받은 모든 것, 즉 소화기, 화재안전 정보, 화재위험 진단 등은 선물이 아니라 영업 도구였다고 재정의하면, 상호성의 원칙에 걸려들지 않고 자유롭게 구매 제안을 거절(또는 수락)할 수 있다. 상대의 호의에는 보답해야 하지만, 영업 전략에는 보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구매를 거절당한 조사원이 최후의 방편으로 연락을 취할 만한 지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만이라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면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조치를 취하라. 한 발 물러나 보다 작은 부탁을 하는 조사원의 이런 태도 역시 설득 전략으로 재정의한다. 이렇게 재정의를 하고 나면 상대의 양보에 대한 보답으로 지인의 이름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대의 작은 부탁이 진심 어린 양보로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나면 부적절하게 빚어진 의무감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승낙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요약

  • 상호성 원칙에 내재된 미래지향적 의무감 덕분에 사회에 유익한 온갖 종류의 지속적 인간관계, 상호작용, 교환 등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어린 시절부터 상호성 원칙을 준수하도록 훈련받으며, 규칙을 어기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제재와 비난을 받는다.
  • 상호성 원칙은 누군가의 부탁에 대해 승낙 여부를 결정할 때 자주 영향을 미친다.
  • 첫째, 상호성 원칙은 그 힘이 매우 강력해서, 어떤 부탁의 승낙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다른 요소들까지 압도해버린다. 둘째, 상호성 원칙은 자신이 원치 않는 호의에도 적용되기에 신세지고 싶은 대상을 선택할 수 없으며, 결국 선택권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 셋째, 상호성 원칙은 불평등한 교환을 일으킬 수 있다. 부채의식에 따른 불편한 느낌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사람들은 간혹 자신이 받은 호의보다 훨씬 더 큰 호의를 요구하는 부탁도 승낙한다.
  • ‘거절 후 양보’ 전략 또는 ‘문전박대’ 전략이라고도 하는 이 설득 기술은 상대가 양보를 하면 나도 양보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용한다. 처음엔 거절당할 것이 뻔한 무리한 요구를 하고 나서 한 발 물러나 작은 요구(원래 바라던 것)를 하면 마치 양보처럼 보여 상대의 승낙을 받아낼 확률이 높아진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거절 후 양보’ 전략은 승낙을 받아낼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상대가 합의사항을 실천할 확률, 미래에도 이와 유사한 요구를 승낙할 확률까지 높다고 한다.
  • 최선의 방어 전략은 상대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첫 번째 호의나 양보는 선의로 받아들이되, 나중에 음흉한 속셈이 드러날 경우 호의나 양보를 술책으로 재정의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PART 3. 일관성의 원칙

캐나다 출신의 심리학자 두 사람은 경마장에서 마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Knox & Inkster, 1968). 일단 베팅을 하고 나면 자신이 선택한 말의 우승 가능성을 베팅 전보다 더 확신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말의 우승 가능성에는 변화가 없다. 똑같은 경마장의 똑같은 트랙을 달리는 똑같은 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권을 구입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 똑같은 말의 우승 전망이 급격히 높아졌다.

 

바로 자신이 이미 한 말이나 행동과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그리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려는) 욕망이다.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기존의 태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그 압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야만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할 수 있고, 당연히 그 결정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Fazio, Blascovich, & Driscoll, 1992).

 

일단 어려운 선택을 내리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으려는 경향은 마권을 산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도 때때로 생각이나 신념이 이미 내린 결정이나 이미 저지른 행동과 모순되지 않도록 하려고 자신을 속인다(Briñol, Petty, & Wheeler, 2006; Mather, Shafir, & Johnson, 2000; Rusbult et al., 2000).

 

 

일관성의 위력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은 정말 우리가 평소에 하기 싫어하던 일까지 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가?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그리고 유지하는 듯 보이려는 욕구는 매우 강력한 설득의 무기 중 하나로,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한다.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이 없는 성격을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으로 여긴다(Allgeier, Byrne, Brooks, & Revnes, 1979; Asch, 1946). 신념과 행동, 말 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엉뚱하거나 표리부동한 사람, 심지어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에 수준 높은 일관성은 대개 뛰어난 인격과 지성이 연상된다. 일관성은 논리와 합리성, 견실함과 정직함의 핵심이다.

 

신속한 결정

일관성 역시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지름길을 제공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일단 마음을 정하면, 일관성을 고수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궁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제에 관한 자료를 찾아 정보의 바다를 헤맬 필요도 없고, 찬반을 결정하려고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도 없으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다.

 

끊임없이 사고(thinking)를 계속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일단 일관성 기록 장치가 작동하면 우리는 사고라는 고역에 심하게 시달릴 필요 없이 일상의 일들을 즐겁게 처리해나갈 수 있다.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의 말처럼 “사고라는 진짜 노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사람이 못할 일이 없다”.

 

자기기만의 요새

우리가 심사숙고를 피하는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인지적 작업 때문이 아니라 심사숙고의 가혹한 결과 때문인 경우도 많다. 엄밀한 사고를 통해 너무도 분명한,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에 도달할까 두려워 정신적인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세상에는 차라리 몰랐으면 싶은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런 경우 자동적 일관성을 통해 이미 프로그램된 무의식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면, 곤란한 현실을 피해 안전한 요새에 숨을 수 있다. 완고한 일관성이라는 요새 안에 숨어 이성의 포위 공격을 피하려는 것이다.

 

"오늘 밤 당장 등록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죠. 그런데 여기 당신 친구 분이 반론을 제기하자 당장 돈을 내고 등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 집에 돌아가서 고민할 테고, 그랬다가는 ‘절대’ 등록하지 못할 테니까요."

 

애타는 숨바꼭질

"먼저 크리스마스 전에 몇 가지 특별한 완구에 대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지. 애들이야 당연히 눈에 보이는 걸 갖고 싶어 하니까, 부모한테 그걸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 자, 여기서부터 완구회사의 천재적인 책략이 개입되네. 부모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겠다고 약속한 장난감들의 공급량을 ‘줄이는’ 거야. 사려던 제품이 품절이 되면 부모들은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장난감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체하겠지. 물론 이런 대체품들은 완구회사에서 반드시 충분한 양을 공급해주거든.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완구회사들은 일부러 품절시켰던 그 특별한 장난감을 또 광고하기 시작하지. 그러면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전보다 더 갖고 싶어 하지. 부모한테 달려가 징징 짜면서 ‘사준다고 약속했잖아, 약속했잖아’라고 졸라대는 거야. 그러면 부모들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또 터덜터덜 완구 매장으로 갈 수밖에 없지."

 

 

나의 입장을 명시하는 입장 정립 (출처: pixabay)

일관성의 열쇠는 '입장 정립'

과연 무엇이 강력한 일관성 기록 장치를 ‘눌러, 작동하는’ 것일까? 사회심리학자들은 그 답을 ‘입장 정립(commitment)’에서 찾아냈다. 일단 상대에게 어떤 입장이나 태도를 취하게 한다면, 이후로는 일관성의 원칙을 이용해 상대에게 자동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유도해내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은 일단 어떤 입장을 정하면 그 입장과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다. 심지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에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최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Brownstein, 2003; Brownstein, Read, & Simon, 2004; Russo, Carlson, & Meloy, 2006).

 

설득의 달인들은 입장 정립 전략을 이용해 우리를 공략한다. 이런 전략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일단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도록 한 다음 이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직설적인 방법으로는 앨버커크 자동차 대리점에서 중고차 판매 매니저로 일하는 잭 스탠코(Jack Stanko)를 예로 들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미자동차딜러협회(National Auto Dealers Association convention) 회의장에서 ‘중고차 판매’ 부문을 진행하던 그는 실적에 목마른 영업사원 100명을 상대로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문서로 만들어서 고객에게 서명을 받으세요. 선불을 받으세요. 고객을 조종하고 거래를 조종하세요. 가격만 맞으면 지금 당장 차를 구매하겠냐고 물어보세요. 고객을 꼼짝 못하게 밀어붙이세요(Rubinstein, 1985).” 이 분야의 전문가인 스탠코는 고객의 승낙을 얻어내려면 고객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립시켜 ‘조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선단체의 전화모금원들은 더 교활한 기술을 사용해 입장 정립을 유도한다. 전화모금원들은 이런저런 자선활동을 위한 모금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안부나 건강 상태 등을 물어본다. “안녕하세요, ‘목표물’ 선생님, 오늘 저녁 편안한 시간 보내고 계십니까?” 또는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내셨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한다. 단순히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려고 이런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예의바르고 세련된 질문에 으레 그렇듯, “괜찮습니다”나 “좋습니다” 또는 “잘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처럼 예의바르고 세련된 답변을 당신에게서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당신이 일단 공개적으로 잘 지낸다고 말하면, 전화모금원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부탁한다면서 당신을 몰아붙이기가 훨씬 쉬워진다. “잘 지내셨다니 다행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화드린 이유는 지금 불행한 일을 당한 분들을 위해 기부를 좀 부탁드리기 위해서거든요…….”

 

소비자 연구가 대니얼 하워드(Daniel Howard,1990)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연구진은 텍사스 주 댈러스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아대책위원회(Hunger Relief Committee) 회원들이 빈곤층에게 식사 제공을 위한 재원 마련의 하나로 직접 가정을 방문해 쿠키를 판매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용건과 직접 관련한 질문만 했을 때(표준 권유 방법)에는 승낙 비율이 18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먼저 “오늘 저녁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대답까지 들은 다음 표준 권유 방법을 사용한 경우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전화 응답자 120명 중 대부분(108명)이 첫 질문에 우호적 답변(“좋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등)을 했다. 둘째, 그런 안부 인사를 받은 사람들 중 32퍼센트가 가정 방문 쿠키 판매를 허락했는데, 이는 표준 권유 방법만 사용한 경우의 두 배에 달하는 성공률이었다. 셋째, 일관성의 원칙에 따라 방문을 허락한 주민들 중 대부분(89퍼센트)이 쿠키를 구매했다.

 

기존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천편일률적인’ 전화 상담을 진행했지만 전화를 끊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추가했습니다. 상담 고객이 보험 사무실에 방문할 약속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끊는 대신, “고객님께서 우리 회사 보험을 선택하신 이유를 정확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덧붙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중공군은 포로들에게 전혀 심각해 보이지 않는 반미적 또는 친공산주의적 발언(“미국은 완벽하지 않다”, “공산국가에는 실업 문제가 없다” 등)을 하도록 요구했다. 포로들이 이런 작은 요구를 수용하면, 그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우선 미군 포로에게서 미국이 완벽하지 않다는 동의를 얻어내면, 어떤 면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보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미군 포로가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하면, 그런 ‘미국의 문제점’을 목록으로 작성해 서명하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다른 포로들과의 토론 시간에 자신이 작성한 목록을 직접 읽도록 했다. 목록을 읽으면 “결국 당신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거지?”라는 식의 질문을 했고, 나중에는 작성한 목록을 더 확대하고 미국의 문제들을 더 자세히 논의하라고 요구했다.

 

그 미군 포로는 순식간에 적군을 돕는 ‘협력자’로 전락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군 포로가 강력한 위협이나 강제에 따라 그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자아 이미지가 자신의 행동 및 ‘협력자’라는 새로운 꼬리표에 맞도록 변했을 뿐이다. 슈인은 연구를 통해, “전체적으로 협력을 거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반면, 대다수가 한두 번에 걸쳐 자신에겐 사소해 보이지만 중국으로서는 얼마든지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행위들로 중국에 협력행위를 했다. ……이런 방법은 취조 중에 자백과 자아비판, 정보 등을 끌어내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라고 밝혔다.

영업사원들은 작은 제품에서 시작해 점점 큰 제품으로 판매를 확대한다. 첫 거래의 목표는 이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거래에 끌어들이는 것이므로 아무리 값싼 제품이라도 상관이 없다. 그런 방식으로 고객을 첫 거래에 끌어들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더 큰 규모의 거래로 발전해간다.

 

작은 요구에서 시작해 결국 그와 관련한 더 큰 승낙을 얻어내는 전략을 ‘한 발 들이밀기(foot-in-the-door)’ 전략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먼저 주민들에게 ‘캘리포니아를 아름답게 지킵시다’라는 내용의 청원서에 서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주를 아름답게 유지하자’는 주장은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나 ‘태교를 잘하자’와 같은 주장처럼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주제이기에 당연히 거의 모든 집주인이 서명했다. 그로부터 2주 후 프리드먼과 프레이저는 똑같은 가정에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흉물스러운 ‘안전운전 하세요!’ 입간판을 앞마당에 세우게 해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번 집주인들의 반응이 이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었다. 무려 절반이나 되는 집주인들이 ‘안전운전 하세요!’ 입간판 설치에 동의한 것이다. 그들이 2주 전에 했던 입장 정립의 주제는 안전운전이 아니라 ‘캘리포니아를 아름답게 지킵시다’라는 전혀 다른 공익적 주제였는데도 말이다.

 

청원서에 서명한 행위 자체로 주민들의 자아 이미지가 바뀌었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시민의식을 발휘해 공공의 일에 적극 참여하는 모범 시민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2주 후, ‘안전운전 하세요!’ 간판을 세우는 또 다른 공익을 위한 일에 참여해달라고 요청받자, 새로 형성된 자신의 자아 이미지와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역시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드먼과 프레이저의 발견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요청도 함부로 승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승낙이 우리의 자아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Burger & Caldwell, 2003). 처음의 승낙은 그와 유사하지만 훨씬 규모가 큰 요구는 물론이고, 실제로 그와 거의 관련이 없는 수많은 다양한 요구에도 승낙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감성과 지성

그러나 모든 입장 정립이 자아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입장 정립이 이런 효과를 발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다. 적극적이고, 공개적이며, 수고스럽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중공군의 의도는 단순히 포로들로부터 정보를 캐내는 것이 아니었다. 미군 포로를 세뇌해 그들 자신, 미국의 정치 체제, 미국이 전쟁에서 맡은 역할,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공군의 진짜 목적은 최소한 당분간만이라도 포로들의 감성과 지성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들의 성과를 “변절과 배신, 태도와 신념의 변화, 규율, 사기, 활력의 저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심”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세갈은 “그들의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중공군의 세뇌 방법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마법 같은 행동

상대의 감정과 신념을 파악할 수 있는 진짜 증거는 말보다 행동에서 나온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상대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을 때도 똑같은 증거, 즉 자신의 행동을 이용한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 태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바로 자신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Bem, 1972; Vallacher & Wegner,1985).

 

적극적인 입장 정립은 우리가 자아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사용할 정보를 제공하고, 그렇게 형성된 자아 이미지는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지으며, 결정된 행동들이 다시 새로운 자아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입장 정립의 효율적인 도구, 문서 작성 (출처: Freepik)

입장 정립의 도구로 문서 작성은 장점이 매우 크다. 첫째,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물리적 증거가 된다. 일단 중공군이 원하는 대로 문서를 작성하면, 미군 포로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순전히 말만 했을 때와 달리 글이라는 증거를 남긴다면 자신의 행동을 잊어버리거나 부인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문서로 남았으므로 미군 포로는 자신의 신념과 자아 이미지를 자신이 이미 저지른 부정할 수 없는 행동과 일치시키게 된다. 둘째, 작성된 문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문서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솔직하게 글에 담았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작성한 문서에는 그 사람의 진실한 태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Gawronski, 2003). 놀라운 점은 그 문서를 자의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PART 4’에서 살펴보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진실로 믿을지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관대한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다는 칭찬을 들은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의 주부들은 일주일 후 다발성경화증협회 모금원들이 방문하자 다른 지역 주부들보다 더 많이 기부했다는 연구도 있다(Kraut, 1973). 누군가 자신을 관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영리한 정치가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상대에게 뭔가 ‘꼬리표’를 붙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대표적인 인물로 전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를 꼽을 수 있다. 사다트는 국제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상대국이 얼마나 협조적이고 공평한 국가인지 익히 알고 있다고 협상 상대를 추켜세웠다. 이런 식의 칭찬으로 그는 상대의 긍정적인 감정을 유도했을 뿐 아니라 협상 상대의 정체성을 자신의 목적 달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협상의 대가인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82)는, 사다트가 협상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협상 상대에게 유지해야 할 평판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이끌어낸 덕분이라고 말한다.

 

일단 입장 정립을 하고 나면 자아 이미지는 양쪽으로부터 일관성의 압박을 받게 된다. 내적으로는 자신의 자아 이미지에 걸맞은 행동을 하라는 압박이, 외적으로는 자신의 자아 이미지를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맞춰 조정하라는 은밀한 압박이 가해진다(Schlenker, Dlugolecki, &Doherty, 1994).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작성한 문서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면(비록 자의로 작성하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아 이미지가 문서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영업 시작 전에 마지막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목표를 정해 종이에 적어두십시오. 목표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당신이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고, 달려갈 곳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종이에 적어두십시오. 뭔가를 적어두면 마력이 발휘됩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워 다시 적어두십시오. 거기서 시작해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됩니다.

 

설득의 무기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왜 P&G(Proctor & Gamble)나 제너럴 푸즈(General Foods) 같은 대기업에서 항상 ‘25, 50 또는 100단어 정도’로 쓰는 ‘구매 후기’ 경연대회를 개최하는지 궁금했다. 이러한 경연대회들은 대부분 비슷해 보인다. 참가자들은 “내가 이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자기 의견을 짤막하게 제시하고, 케이크 믹스든 바닥청소 세제든 경연 주제로 나온 제품의 특징을 찬양한다.

 

이제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구매 후기 경연대회의 숨은 목적, 즉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제품을 보증하게 하는 것은 정치 백일장의 숨은 목적, 즉 최대한 많은 미군 포로들이 중국 공산주의를 보증하게 하는 것과 똑같다. 진행 방식 또한 같다. 참가자들은 수상 가능성이 거의 없어도 매력적인 상품을 받으려고 자발적으로 글을 쓴다.

 

대중의 눈

문서 작성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효과적인 이유 중 하나는 문서는 공개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포로들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중공군은 중요한 심리 원칙 하나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공개적 입장 표명이야말로 가장 오래도록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 말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면,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 입장을 고수하려는 욕망이 생긴다(Tedeschi, Schlenker, &Bonoma, 1971; Schlenker et al., 1994). 일관성 있는 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특징인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일관성 없는 사람은 변덕스럽고, 불확실하고, 귀가 얇고, 경솔한 사람으로 매도되는 반면 일관성 있는 사람은 이성적이고, 확실하고, 신뢰할 만하고, 건전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이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행위를 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을 공개할수록 체면상 그 입장을 더욱 고수하려 들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대학생들에게 여러 개의 선을 보여주고 마음속으로 길이를 짐작하게 했다. 이때 첫 번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짐작한 수치를 종이에 적고 서명해 실험자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공개하도록 했다. 두 번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짐작한 수치를 금방 썼다가 지울 수 있는 매직 패드(magic pad)에 몰래 적었다가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지움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자신한테만 분명히 하도록 했다. 세 번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아예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 없이 짐작한 수치를 머릿속으로만 기억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는 매우 분명했다. 기존 선택을 가장 쉽게 포기한 집단은 자신의 판단 내용을 적지 않은 집단이었다. 이들은 머릿속에 담고 있던 자신의 첫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자, 금방 새로운 정보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앞서 ‘옳다’고 생각했던 결정을 쉽게 번복했다. 입장 정립을 하지 않았던 이 집단에 비해, 자신의 판단을 매직 패드에 잠깐 동안 기록했다가 지운 집단은 판단을 번복할 기회를 줘도 의견을 바꾸는 데 다소 머뭇거렸다. 비록 자신한테만 했던 입장 정립이었지만, 일단 첫 판단을 글로 적었으므로 기존 결정과 모순되는 새로운 증거의 영향을 거부하고 기존 결정을 고수하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견 번복을 가장 강하게 거부한 집단은 바로 자신의 첫 판단을 공개적으로 보고한 집단이었다. 이 집단을 가장 완고한 집단으로 이끈 것은 바로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었다.

 

수고의 효과

식당 주인은 예약 담당자에게 예약을 받을 때 “예약 변경이나 취소를 원하시면 미리 전화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예약 변경이나 취소를 원하시면 미리 전화를 주시겠습니까?”라고 묻고 나서 잠시 기다리며 답변을 들으라고 지시했답니다. 그러자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예약 손님 비율이 3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급감했다고 합니다.

 

예약 변경이나 취소를 원할 때 다시 전화해달라고 요청한 다음 잠시 기다리며 손님의 약속을 받아낸 것이 주효했다. 고객에게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하게 함으로써 고객이 약속을 지킬 확률을 높인 것이다.

 

대중음악 콘서트 광고가 실렸는데 가장 중요한 티켓 가격 정보가 빠져 있다. 공연 기획자가 입장권 가격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가의 티켓 가격에 팬들이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할까 두려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전화를 걸거나 티켓 판매처를 방문해 티켓 가격을 곧바로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다. 공연 기획자는 잠재 고객들이 그런 식으로 전화나 방문을 ‘하고 나면’, 티켓 구매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티켓 가격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거는 행동 자체가 이미 콘서트에 대한 첫 번째 입장 정립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통화 중 신호가 울릴 때마다 다시 버튼을 누르면서 한참을 기다린 수고를 덧붙여보라. 티켓 가격을 공개할 무렵이면 팬들은 이미 공연 기획자가 원하는 바로 그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즉 공연을 위해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수고스럽게 헌신한 상태 말이다.

 

젊은 연구자 엘리엇 애론슨(Elliot Aronson)과 저드슨 밀스(Judson Mills)는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뭔가를 얻은 사람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같은 것을 획득한 사람보다 그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을 입증하기로 했다.

 

두 연구자가 가설을 시험할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사교클럽의 입회의식이었다. 실험 결과 섹스 관련 토론클럽에 가입하려고 극도로 수치스러운 입회의식을 견뎠던 여대생은 자신이 가입한 클럽과 토론 내용이 매우 가치 있다고 확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애론슨과 밀스의 지시를 받은 클럽회원들이 최대한 ‘가치도 없고 재미도 없는’ 토론을 준비했는데도 말이다. 반면에 훨씬 수월한 입회의식을 거쳤거나 아예 입회의식을 치르지 않은 여학생들은 자신이 가입한 ‘가치 없는’ 클럽에 대해 확실히 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여학생들이 특정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수치가 아니라 고통을 견딘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Gerard & Mathewson, 1966). 입회의식의 일부로 전기 충격을 더 강하게 받은 여학생일수록 나중에 자신이 선택한 클럽과 그 활동이 더 재미있고, 지적이고, 바람직하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집단의 생존 전략에 따랐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역할은 다음 세대의 집단 구성원들이 자기 집단을 좀 더 매력적이고 가치 있게 생각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인간에게, 노력해서 얻은 것을 더 좋아하고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 한, 이 집단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입회의식을 지속할 것이다. 이에 따라 신입회원들의 충성과 헌신으로 집단의 단결과 생존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54개의 부족 문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극적이고 가혹한 입회의식을 치르는 부족들이 내부 결속력이 가장 강했다(Young, 1965).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구성원의 자긍심과 연대의식 함양에 관심이 있는 단체라면 가혹한 신고식 과정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적 선택

상황 자체는 크게 다르지만, 사교클럽이 사회봉사활동을 입회의식에 포함하지 않는 것은 중공군이 작은 상품만 내걸어 미군 포로들의 백일장 참가 유인을 줄인 것과 같은 이유이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책임지기 바란 것이다. 어떤 핑계나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예비회원에게 그것이 자선활동이었다고 생각할 여지를 주어선 안 된다. 작문에 반미적인 내용을 덧붙인 미군 포로도 그것이 대단한 상품을 받기 위한 위장술이었다고 둘러댈 수 없어야 한다. 사교클럽과 중공군 모두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 억지로 상대의 입장 정립과 헌신을 짜낸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내적 책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우리는 강력한 외부 압력 없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대해서만 내적 책임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큰 보상 역시 그런 외부 압력 중 하나다. 큰 보상에 따라 특정한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에 대해 내적 책임을 느끼지는 못한다.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입장 정립은 불가능하다. 강력한 위협도 마찬가지 작용을 한다. 즉각적인 복종은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헌신은 유도하기 어렵다.

 

실제로 물질적 보상이 크면 어떤 행동에 대한 내적 책임이 줄어들거나 ‘손상’되고, 나중에 보상이 사라지면 같은 행동을 하기 싫어지게 된다.

 

남자아이를 일시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금지된 장난감을 갖고 놀다 들키면 심한 벌을 받을 거라고 위협만 하면 되었다. 프리드먼은 자신이 언제든 달려와 벌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한 감히 로봇을 갖고 놀려고 시도하는 아이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실험을 종료한 후 6주가 지난 시점에 한 젊은 여성 연구원을 남자아이들의 학교로 파견했다. 여성 연구원은 남자아이들을 한 번에 한 명씩 교실 밖으로 불러내 실험을 실시했다. 프리드먼의 실험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남자아이들을 장난감 다섯 개가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서 그림을 그리게 했다. 연구원은 남자아이들에게 자신이 그림을 평가하는 동안 방 안에 있는 아무 장난감이나 갖고 놀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장난감을 집어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장난감을 집어든 남자아이들 중 77퍼센트가 6주 전 금지당했던 로봇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6주 전에는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프리드먼의 강한 위협이 더 이상 그가 옆에서 벌을 주지 않는 상황이 되자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또 다른 집단의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방법을 약간 바꿔 다시 한 번 실험을 실시했다. 이번에도 장난감 다섯 개를 보여주며 자신이 방을 비운 동안 로봇을 갖고 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로봇을 갖고 노는 건 나쁜 짓이야”라고만 말해두었다. 이번에는 남자아이를 복종시키는 강한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두 집단 사이의 진짜 차이는 그로부터 6주 후 아이들이 프리드먼의 감시가 없는 상태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게 되었을 때 나타났다. 놀라운 결과는 로봇을 갖고 놀지 말라는 강한 위협을 받지 않은 아이들한테서 나타났다. 이들은 원하는 아무 장난감이나 갖고 놀라고 했는데도 대부분 로봇 장난감을 피했다. 로봇이 다섯 개의 장난감(싸구려 플라스틱 잠수함, 공 없는 어린이용 야구 글러브, 총알 없는 장난감 소총, 장난감 트랙터) 중 가장 매력적인 장난감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다섯 개의 장난감 중에서 로봇을 선택한 아이는 33퍼센트뿐이었다.

 

외부 압력을 가장 적게 느끼는 이유가 가장 좋다. 가장 적합한 이유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틀림없이 그만한 보상이 따를 것이다. 단기적인 복종과 장기적인 입장 정립의 차이라고나 할까?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가 300년 전에 말했듯이, “의지에 거스르는 동의를 한 사람은 전혀 의견이 바뀐 것이 아니다”.

 

자동 강화

내적 변화로 이어지는 입장 정립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바로 내적 변화에 자동 강화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설득의 달인들은 변화를 강화하려고 일부러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일관성의 원칙이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시민이라는 자아 이미지를 갖게 된 사람은 자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전에는 몰랐던 봉사활동의 새로운 가치에도 눈을 뜨게 된다. 전에는 들리지 않던 시민활동과 관련한 새로운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런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느낀다. 정리하자면, 자신의 신념 체계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욕구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사회봉사활동이 옳다고 스스로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입장 정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이유를 만드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이유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그 유인 요소를 제거해버린다. 우리가 새로 만들어낸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기존 결정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판매상들은 이를 위해 ‘낮은 공 던지기(throwing a lowball)’라는 전략을 이용한다.

 

영업사원들은 먼저 고객이 관심을 보이는 차에 대해 경쟁사보다 거의 400달러 정도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할인 가격은 거짓이다. 영업사원은 그 가격으로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다. 그의 목적은 잠재 고객이 자동차를 자신의 대리점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하게 하려는 것이다. 일단 잠재 고객이 결정을 내리면, 고객을 더욱 깊이 끌어들이기 위해 계약 관련 서류를 한 뭉치 작성하게 하거나, 금융 관련 조건들을 결정하게 하거나,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전에 하루 정도 시운전을 해보면서 ‘자동차를 직접 느껴보고 이웃이나 직장 동료들에게도 보여주라고’ 권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동안 고객은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자신의 투자를 정당화할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Brockner & Rubin, 1985; Teger, 1980).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대개는 견적서에서 ‘실수’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영업사원이 깜빡하고 에어컨 비용을 추가하지 않아 고객이 에어컨 설치를 원한다면 원래 견적에 400달러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식이다. 고의라는 의심을 피하려고 일부 영업사원들은 금융 관련 서류를 처리하는 은행 측에서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도록 한다. 또는 마지막 단계에서 상사의 결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수만 달러짜리 거래를 하는 고객 입장에서 400달러 정도 추가하는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영업사원이 계속 강조하듯이 400달러를 추가해봐야 어차피 경쟁사와 같은 가격인데다, ‘당신이 원하는 차가 바로 이 차가 아닌가’.

 

어떤 ‘낮은 공’ 전략이든 기본적인 전개 과정은 같다. 먼저 고객의 긍정적인 구매 결정을 유도할 만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 하지만 고객이 결정을 내리고 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 처음 제시한 유리한 조건을 슬그머니 철회한다. 그러면 도무지 고객이 거래를 수락할 것 같지 않은 불리한 조건만 남는다. 그런데도 효과가 있다. 물론 모든 고객이 넘어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수많은 자동차 대리점에서 주요 판매 전략으로 이용할 만큼의 효과는 발휘된다. 영업사원들은 고객이 일단 거래 과정에 발을 담그면 스스로 자기 결정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체계를 구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정당화를 통해 고객들이 자기 결정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지지대를 구축하면, 영업사원이 처음에 제공한 원래의 지지대가 사라져도 신뢰 체계 전체가 붕괴되지 않는다. 자기 선택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 기분 좋아진 고객은 사라진 지지대를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지지대가 없었다면 다른 추가적인 지지대들은 당연히 없었다는 생각을 도무지 못한다.

 

매력적인 조건으로 긍정적인 결정을 끌어낸 다음, 이루어진 계약에 뭔가 ‘불쾌한 조건’을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낮은 공’ 전략이란 일단 계약을 맺으면 상황이 바뀌어 계약 조건이 불리해도 기존대로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계약에서 긍정적인 면이 사라지든 계약에 부정적인 면이 추가되든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한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전화를 걸어 연구가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고 바로 알려주었다. 그러자 24퍼센트의 학생들만 참여에 동의했다. 또 다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낮은 공을 던져보았다. 먼저 ‘사고 과정’ 연구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 동의를 얻은 다음(56퍼센트의 학생들이 참여에 동의했다), 연구가 오전 7시에 시작되니까 원하지 않으면 참여 신청을 철회해도 좋다고 말했다. 철회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무려 95퍼센트의 학생들이 자신이 약속한 대로 정확히 오전 7시에 심리학과 건물에 나타났다.

 

‘낮은 공’ 전략의 놀라운 점은, 상대가 형편없는 선택을 했는데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별 볼 일 없는 대안밖에 제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 특히 이 전략을 좋아한다.

 

나의 이웃 팀을 예로 들어보자. 팀이 술을 끊고 결혼도 하겠다는 약속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 직전이었던 사라의 마음을 되돌린 사건이 기억날 것이다. 사라는 팀을 선택한 후 팀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전보다 더 팀에게 헌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라는 전에는 몰랐지만 팀에게서 수많은 긍정적인 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라가 팀한테서 새로 발견한(만들어낸) 매력들은 대단히 실제적이다. 그녀는 팀에게 그토록 헌신하기 전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상황들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팀을 선택한 사라의 결정은 객관적으로 매우 어리석어 보이지만, 스스로 지지대를 구축해가면서 사라를 정말로 더 행복하게 해준 셈이다. 그러나 나는 사라에게 ‘낮은 공’ 전략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라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무엇이든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낫다. 하지만 내가 ‘낮은 공’ 전략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는 평생 동안 사라의 원망을 들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낮은 공' 전략으로 공익을 증진하는 방법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람은 일단 어떤 일에 발을 들여놓으면 자기 결정을 정당화하는 지지대를 스스로 구축해나간다. 주민들은 새로운 에너지 절약 습관을 갖게 되었고, 공익을 위한 자신의 노력에 자부심 또한 높아졌으며, 미국의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게다가 가스 요금이 절감되는 것도 즐거웠으며, 에너지 소비와 관련한 자신의 자제력도 자랑스러웠고, 무엇보다 자신이 에너지 절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이유가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기에, 명단 발표라는 애초의 이유가 사라져버려도 확실한 참여와 헌신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전히 이상한 점은, 명단 발표가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각 가정의 에너지 절약 노력이 단순한 유지 수준을 넘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가설은 이렇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문에 명단이 발표된다는 사실 자체는 주민들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에너지 절약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주민들의 연료 절약 실천을 지지해 준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오직 그것만이 외부적인 이유였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연료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을 방해하는 유일한 요소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명단 발표 취소를 알리는 통지가 도착하자, 에너지 절약에 적극 참여하는 모범 시민이라는 주민들의 자아 이미지에 유일한 장애물이 제거된 셈이었다. 이 온전하고 새로운 자아 이미지 덕분에 주민들은 에너지 절약에 더 열심히 매진할 수 있었다.

 

 

일관성의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입장 정립과 일관성 원칙이 결합된 설득의 무기를 방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일관성 원칙에 따르는 것이 대체로 유용하고 때로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어리석고 경직된 측면도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뱃속이 불편한 느낌에 반응하라

첫 번째 신호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관성의 덫에 걸려 어떤 일을 승낙해야 할 때는 뱃속이 불편한 느낌이 든다.

 

일관성 원칙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바로 상대가 나에게 하는 짓을 정확히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완벽한 반격이 가능하다. 상대의 계략에 넘어가 내가 앞서 했던 말이나 행동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리석게도 상대의 요구를 승낙하려는 순간 뱃속이 불편한 느낌이 들면 나는 즉시 상대가 벌이는 짓을 정확히 이야기한다. 일관성 유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불합리한 일관성은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의 느낌을 포착하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대상에 대해 지적으로 인식하기 직전의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Murphy & Zajonc, 1993; van den Berg et al., 2006). 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순수하고 단순한 감정이 우러날 것이다. 따라서 주의를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인지 과정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타나는 감정적 반응을 포착할 수 있다. 이런 접근 방식에 따라 사라가 “과연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결정적인 자문을 했을 때 그 반응으로 제일 먼저 스치는 감정을 찾아낸다면, 그 감정을 본인의 진심이라고 믿어도 좋다. 그 감정이야말로 사라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신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라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사용한 여러 가지 수단으로 왜곡되지 않은 진짜 신호 말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그 대상에 대한 생각과 항상 다르다거나 생각보다 언제나 더 믿을 만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과 신념이 간혹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은 여러 가지 증거로 입증된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이미 헌신한 탓에 그에 따른 합리화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신념보다는 감정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특히 사라처럼 주요 관심사가 행복 등 감정적인 문제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Wilson et al., 1989).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진짜 휘발유 가격을 알면서도 아까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에 집중한 결과, 나는 전혀 왜곡되지 않은 확실한 답을 얻었다. 틀림없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속도를 늦추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휘발유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그 밖의 이유들은 그 주유소를 선택하는 데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특별 취약 부류

연령이 높을수록 일관성 선호 경향이 높아졌으며, 50세 이상 피험자들의 경우 자신이 기존에 취한 입장과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피험자들 중 가장 강했다(Brown, Asher, & Cialdini, 2005).

 

개인주의

개인주의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할 때 주변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경력과 의견, 선택 등을 주로 참고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자신이 예전에 한 말이나 행동을 수단으로 삼는 설득 전략에 특히 취약하다.

 

20분짜리 설문 조사에 참여했던 학생들 중 40분짜리 설문 조사에도 참여한 학생 수는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한 미국 출신이 아시아 출신보다 두 배나 많았다(21.6퍼센트 대 9.9퍼센트). 이유가 무엇일까? 이전에도 비슷한 부탁에 개인적으로 동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이 기존에 했던 행동을 근거로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결정한다.

 

 

요약

  • 첫째, 일관성 있는 성격은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둘째, 사회적 평판 외에도 일관성 있는 행동은 대체로 일상생활에도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 셋째, 일관성 있는 태도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헤쳐나가는 소중한 지름길을 제공한다.
  • 효과적인 설득을 위해서는 첫 번째 입장 정립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어떤 입장을 취하면 그 입장과 일관성 있는 요구에 더 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 입장 정립은 적극적이고 공개적이며 수고스럽고 자발적(강요에 따른 것이 아닌)일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 입장 정립은 잘못된 경우일지라도 ‘자동 강화’를 통해 스스로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취한 입장이 옳다고 믿게 해주는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내 계속 정당화를 하는 것이다.
  • ‘뱃속이 불편한 느낌’은 입장 정립과 일관성 함정에 빠져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승낙해야 할 때 찾아온다. 이럴 때는 상대에게 어리석은 일관성을 유지하느라 불합리한 요구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호는 이와 달리 최초의 입장 정립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럴 때는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같은 입장을 취했을까?”라고 자문해봐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적인 느낌이 정답이라 할 수 있다.

 

 


PART 4. 사회적 증거의 법칙

제작자들은 왜 녹음된 웃음소리를 애용하는 것일까? 이들은 대중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덕분에 높은 자리에서 고액 연봉을 받지 않는가? 그런데도 시청자들이 질색을 하든, 뛰어난 제작진과 출연진이 반대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녹음된 웃음소리를 반드시 삽입하려 애쓴다.

 

여기에는 간단하고 흥미로운 이유가 숨어 있다. 바로 제작자들이 사회심리학 연구 결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코미디 프로그램에 녹음된 웃음소리를 삽입하자 시청자들이 더 자주, 더 오래 웃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도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다(Provine, 2000). 이는 특히 수준이 떨어지는 코미디의 경우 더 효과적이었다(Nosanchuk & Lightstone, 1974).

 

이상해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시청자의 반응이다.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웃음을 들으면, 우리는 왜 더 많이 웃게 될까? 그런 프로그램을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자들은 시청자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녹음된 웃음소리는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가짜 티가 너무 많이 나서 누구도 진짜 웃음과 헷갈리지 않는다. 우리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삽입된 유쾌한 웃음소리가 코미디의 수준과 아무 상관이 없고, 진짜 방청객의 반응도 아니며, 방송국 기술자가 기계 조작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소리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문제는 이 확실한 가짜 웃음이 우리에게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다수를 따라 움직이는 개인 (출처: pixabay)

다수의 행동을 따르려는 성향

녹음된 웃음소리가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또 하나의 강력한 설득의 무기인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살펴봐야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내린 판단을 근거로 삼는다(Lun et al., 2007). 특히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 결정해야 할 때 더욱 그렇다.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지 살펴본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는 행동을 옳은 행동으로 보는 경향은 대체로 유익하게 작용한다. 사회적 증거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수록 실수할 확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수가 하는 행동은 올바른 행동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보여주는 이런 특징은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내용이 우스운지 아닌지 결정하는 근거가 다른 사람들의 웃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증거라는 확고한 원칙에 따른 행동일 뿐이다. 우리가 틀림없는 거짓 웃음에도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근거로 어떤 내용이 우스운지 결정하는 데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사람들은 코미디의 실제 내용이 아니라 소리에만 반응하게 된다. 새끼 칠면조가 없어도 녹음된 ‘칩칩’ 소리만으로 어미 칠면조의 모성 반응을 촉발할 수 있듯이, 실제 방청객 없이도 녹음된 ‘하하’ 소리만으로 시청자를 웃길 수 있다. TV 제작자들은 우리에게 지름길을 선호하는 성향, 즉 부분적 증거만 갖고도 자동반응을 보이는 성향이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 자신들이 녹음 테이프만 ‘누르면’, 시청자의 반응이 자동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피플 파워

광고주들은 자사 제품에 대해 ‘최다 판매’나 ‘초고속 성장’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품질이 우수하다고 직접적으로 광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충분한 증거가 된다.

일부 나이트클럽 주인들은 입장 공간이 충분한데도 손님들을 문 밖에 길게 세워놓고는 가장 인기 좋은 나이트클럽이라는 사회적 증거를 조작하기도 한다. 영업사원들도 구매를 권유할 때 이미 제품을 구매한 기존 고객들의 이름을 최대한 많이 언급하라고 배운다. 영업교육 및 동기부여 강사인 카베트 로버트(Cavett Robert)는 이 원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표현한 바 있다. “주도자는 5퍼센트뿐이고, 나머지 95퍼센트는 ‘따라쟁이’들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은 영업사원이 제시하는 어떤 증거보다 더 설득력이 높다.”

 

아이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개와 노는 다른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이번에는 아이들이 개와 노는 장면이 담긴 영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효과는 같았다. 특히 여러 명의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애완견과 즐겁게 놀고 있는 장면을 편집해 보여주자 효과가 가장 강력했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케네스 크레이그(Kenneth Craig)와 동료 연구진에 따르면,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의 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피험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때 다른 사람이 똑같은 전기충격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자, (피험자의 자체 보고 및 감각민감도 같은 심리반응, 심박수와 피부전도율 같은 신체반응 등에서 모두) 피험자가 느끼는 고통이 줄어들었다(Craig & Prkachin, 1978).

 

친구 네 명을 데리고 같은 장소에 가서 다시 한 번 위를 쳐다보라. 채 1분도 안 되어 수많은 행인들이 옆에 모여들어 목을 길게 빼고 위를 올려다볼 것이다. 바빠서 그냥 지나쳐야 하는 행인들도 잠깐 멈춰 서서 올려다보고 싶어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당신의 실험 결과가 뉴욕 출신 심리학자 세 명이 시행한 실험 결과와 동일하게 나온다면, 무려 행인들 중 80퍼센트가 눈을 들어 당신이 보는 곳을 바라볼 것이다(Milgram, Bickman, & Berkowitz, 1969).

 

폭력적인 장면들이 시청자의 공격적인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논의하기 쉽지 않은 주제지만, 스물여덟 가지 관련 자료들을 검토해본 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고 나면 일상생활에서도 공격성을 보일 확률이 높았다(Wood, Wong, & Chachere,1991).

 

예언 실패, 그 후

역사 기록에 따르면 예언이 실패하고 나면 늘 대단히 불가사의한 패턴이 나타났다. 광신자들이 환멸에 빠져 흩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념에 더 확신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예언이 어긋난 후에도 대중의 조롱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가 공공연히 집단의 교의를 주장하고 열정적으로 포교에 전념했다. 예언이 실패해도 열정이 약화되지 않고 더 강화된 셈이다.

 

페스팅어와 리켄, 샤흐터는 홍수 예정일 직전인 일주일 동안 이 종교 집단의 동향을 관찰하면서 신도들의 행동에서 매우 흥미로운 특징 두 가지를 발견했다. 첫 번째 특징은 집단의 신념 체계에 대한 헌신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 신념이 진리임에 틀림없다는 확신 때문에 극도의 사회적ㆍ경제적ㆍ법적 압력을 견뎌냈으며, 압력에 맞서면 맞설수록 교리에 대한 헌신은 커져갔다.

 

홍수 예정일 직전 신도들이 보여준 두 번째 중요한 특징은 기이할 정도로 무기력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집단의 신조를 그토록 신뢰하는 사람들이 신조를 전파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초기에 대재앙이 임박했다는 예언을 공개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교인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의심이 쌓이면서 신도들의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할 무렵 두 가지 놀라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첫 번째 사건은 새벽 4시 45분에 벌어졌다. 키치 부인이 위에서 내려오는 신성한 메시지를 ‘자동 기술’로 받아 적기 시작한 것이다. 받아 적은 메시지를 읽어보니 그날 밤 사건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담겨 있었다. “작은 무리가 밤새도록 홀로 깨어 세상에 빛을 발하니 신께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셨다”라는 내용이었다. 깔끔하고 효과적인 설명이었으나, 신도들을 충분히 납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노출을 꺼리며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던 정책이 180도 바뀌었을 뿐 아니라 선교에 대한 태도도 완전히 변했다. 전에는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되는 대로 대접하거나 무시하고, 심지어 배척하던 신도들이 예언이 빗나가자마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방문객을 환영했고, 온갖 질문에 성실히 답했으며, 한 명이라도 더 개종시키려고 애를 썼다.

 

신도들이 이런 급격한 변화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과묵하고 배타적인 태도로 ‘신의 말씀’을 수호하던 사람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열정적이고 개방적인 선교사로 변신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예언이 실패하는 바람에 세상의 비웃음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된 최악의 순간에 말이다.

 

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선교에 뛰어들게 된 것은 믿음이 강해져서가 아니라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해서였다. 비행접시와 홍수 예언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자신들의 신앙 체계 전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신도들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신앙을 포기하기엔 그동안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제 와서 포기한다면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조롱과 경멸도 참을 수 없을 터였다.

 

물리적 현실은 그들의 신념 체계를 철저히 배신했다. 비행접시는 날아오지 않았고, 외계인도 방문하지 않았으며, 홍수도 터지지 않았다. 예언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념 체계를 뒷받침해줄 물리적 증거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으니 다른 유형의 증거를 만들어내야 했다. 바로 ‘사회적 증거’였다.

 

대중의 경멸과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홍보와 포교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말씀’을 전파할 수만 있다면,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칠 수만 있다면, 회의론자들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럼으로써 새 신자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위기에 처한 자신들의 신념 체계가 좀 더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예언이 실패한 모든 종말론 집단이 그렇게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일단 효과적인 포교로 사회적 증거 확보에 성공하기만 하면 크게 번성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아나밥티스트파가 종말의 해라고 예언했던 1533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자 신도들은 전례 없는 열정으로 새 신자 확보에 나섰다. 유난히 언변이 뛰어났던 야코프 판 캄펜(Jakob van Kampen)이라는 선교사의 경우 단 하루 만에100명까지 개종시켰다고 전한다. 아나밥티스트파를 지지하는 사회적 증거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물리적 증거의 부재를 압도하더니 네덜란드 최대 도시의 주민 3분의 2를 추종자로 바꿔놓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고민 (출처: Freepik)

사망 원인 - 불확실성

시카고 종교 집단을 보면,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선교 열정에 불을 지핀 것은 자신의 신념이 흔들린다는 느낌이었다. 대체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상황이 애매모호할 때, 불확실성이 지배할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확률이 높다(Sechrist & Stangor, 2007; Wooten& Reed, 1998; Zitek & Hebl, 2007).

 

실반 골드먼(Sylvan Goldman)은 1934년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고객들이 손에 들고 있는 장바구니가 가득 차면 쇼핑을 중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의 쇼핑 카트를 고안했는데, 처음에는 접의자에 바퀴를 달고 무거운 금속 바구니를 장착한 형태였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괴상한 모양새에 손님들은 카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상당량의 카트를 제작해 상점 중앙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배치하고 사용법과 이점을 설명하는 간판까지 세워놓았는데도 말이다. 실망감에 빠져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 골드먼은 고객들의 불안을 줄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바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활용한 방법이었다. 그는 사람을 몇 명 고용해 매장에서 카트를 끌고 쇼핑을 하게 했다. 그러자 고객들이 곧 이들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카트가 전국적으로 대유행하면서 무려 4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축적한 거부가 되었다(Dauten, 2004).

 

그러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기 쉽다.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처럼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상황 판단을 위해 서로의 행동을 관찰하다 보면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원적 무지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왜 국가적 수치라고 할 만한 황당한 사건, 즉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고도 도움이 간절한 희생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사건들이 그토록 자주 발생하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주변에 목격자가 너무 많을 때는 두 가지 이유로 남을 돕지 않을 확률이 높다. 첫 번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주변에 도울 사람이 많을 때는 반드시 내가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줄어든다.’ “누군가 도와주거나 뭔가 조치를 취하겠지. 누군가 벌써 했을지도 모르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들 누군가 도와줄 거라고, 또는 벌써 어떤 조치를 취했을 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아무도 돕지 않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심리적으로 좀 더 흥미로운데,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다원적 무지 효과와 관련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응급 상황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골목에 누워 있는 남자는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일까, 아니면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것뿐일까? 옆집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데 강도라도 든 것일까, 아니면 부부싸움이 격해진 것일까? 강도라면 경찰에 신고해야겠지만, 평범한 부부싸움이라면 괜히 끼어들었다 망신만 당할 것이다. 과연 어떤 상황일까?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서 단서를 얻는 것이다. 다른 목격자들의 대응 방식을 보면 위급 상황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망각하기 쉬운 점은 그 목격자들 역시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타인에게는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모두들 주변을 슬쩍슬쩍 훔쳐보며 은밀히 찾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서로서로 별일 아니라는 듯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모습만 본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 따라 위급 상황일지라도 위급 상황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과학적 접근

달리와 라타네는 연구진을 구성해 체계적인 연구에 돌입했다(Latané & Nida, 1981). 연구진은 위급 상황을 연출해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목격자에게 보여준 후 각각 도움을 몇 번 받는지 측정했다. 첫 번째 실험(Darley & Latané, 1968)에서 뉴욕 대학교 학생이 간질 발작을 가장하자 목격자가 혼자인 경우에는 85퍼센트가 도움을 준 반면, 목격자가 다섯 명인 경우에는 31퍼센트만 도움을 주었다. 위급 상황을 혼자 목격한 경우 거의 모두가 도움을 준 사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정머리 없는 사회’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목격자가 눈앞의 상황이 위급한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럴 때는 여러 사람, 특히 서로 모르는 사이인 여러 사람이 상황을 목격했을 때보다 혼자 목격했을 때가 도움을 제공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Latané & Rodin, 1969). 이 결과를 보면, 다원적 무지의 효과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극대화되는 듯하다. 낯선 사람과 있을 때는 모두들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이려 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잘 짓지 않을 뿐더러 상대의 반응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상대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잘 읽어내지도 못한다. 결국 위급 상황을 위급 상황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도시 생활의 세 가지 특징, 즉 혼란스런 환경, 높은 인구 밀도, 이웃과의 단절은 여러 연구에서 위급 상황을 목격하고도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 조건들로 밝혀진 요인들과 완벽히 일치한다. 따라서 굳이 도시인의 ‘비인간화’니 ‘소외’니 하는 우울한 개념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목격자가 많았는데도 희생자가 그대로 방치되는 불행한 사태가 왜 도시에서 자주 발생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도시인의 응급 상황 대처법

무엇보다 목격자들이 지켜보기만 하고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모두가 불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위급 상황이 벌어졌는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서 돕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일단 위급 상황이 분명하다는 인지를 하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 사람들은 엄청나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연구 결과를 근거로 조언하자면, 목격자 무리에서 한 사람을 골라 집중 공략해야 한다. 정확히 한 사람만 쳐다보면서 말해야 한다. “거기, 파란 재킷 입은 남자 분, 저 좀 도와주세요.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그 한마디로 사람들을 망설이게 하던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 그 한마디가 파란 재킷을 입은 남성에게 ‘응급 구조원’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그 남성은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응급 상황이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그 도움을 제공해야 하며, 정확히 어떤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위급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상대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는 일일 것이다. 목격자들이 자기들끼리 상황을 판단하게 하면 안 된다. 특히 목격자가 다수인 경우 사회적 증거의 원칙과 그에 따른 다원적 무지 효과 때문에 위급 상황을 위급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하는 원숭이

바로 ‘유사성’이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우리가 관찰하는 대상이 우리와 비슷한 사람인 경우에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Festinger,1954; Platow et al., 2005). 비슷한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것이 옳은 행동인지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보다는 비슷한 사람을 따라할 확률이 높다(Abrams, Wetherell, Cochrane, Hogg, & Turner, 1990; Burn, 1991; Schultz, 1999).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기용한 TV 광고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평범한 시청자(잠재력이 가장 큰 시장)에게 제품을 판매하려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그 제품을 즐겨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광고주들은 알고 있다.

 

이런 성향은 성인뿐 아니라 아동한테서도 나타난다. 한 예로 학교에서 금연 교육을 할 때도 또래가 강사로 나섰을 때 교육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밝혀졌다(Murray, Leupker, Johnson, & Mittlemark, 1984).

 

“음, 나는 네 살이고 토미도 네 살인데, 토미는 튜브 안 끼고 수영할 수 있어. 그럼 나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따라 죽는 원숭이

몇몇 자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직후에는 비행기 추락 사고에 따른 사망자 수가 1,000퍼센트까지 급증한 것으로 밝혀졌다(Phillips,1979)! 더 놀라운 사실은 비행기 사고뿐 아니라 자동차 사고도 급증한다는 것이다(Phillips, 1980).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또 하나의 놀라운 통계자료가 있다. ‘치명적 교통사고는 자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지역에서만 급증한다.’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아무리 사회적 조건이 동일하다 해도 교통사고가 급증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살 사건을 보도한 지역들 중에서 자살 사건을 더 크게 보도한 지역일수록 교통사고도 더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은 자살과 교통사고를 동시에 유발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오히려 자살 보도 자체가 교통사고를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애도’ 이론은 자살 보도와 치명적인 교통사고의 상관관계, 즉 보도를 통해 자살 사건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슬픔에 빠져 부주의한 운전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다음의 놀라운 사실 하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 ‘신문 1면에 단독 자살 사건이 보도되면 단독 사망 사고가 급증하고, 대량 학살을 저지른 후 자살하는 사건이 보도되면 역시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급증한다.’ 단순한 애도의 감정으로는 이런 패턴이 나타날 수 없다.

 

베르테르 효과에는 오싹하면서도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독일의 대문호 요하네스 볼프강 폰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주인공 베르테르의 권총자살로 끝나는 이 소설은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덕분에 괴테는 엄청난 명성을 얻었지만 유럽에는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일부 국가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할 정도였다.

 

필립스는 1947년에서 1968년 사이의 미국 자살 통계자료를 자세히 분석해 현대인의 베르테르 효과를 입증하는 증거를 발견했다. 신문1면에 자살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두 달 사이에 평균 자살률이 평소보다 58퍼센트나 증가했다. 어떤 의미에선 자살 사건 보도 한 건 한 건이 사람을 58명씩 살해한 셈이다. 보도만 아니었다면 살아 있을 사람들이 자살을 하게끔 했으니 말이다. 필립스는 또한 자살 사건 보도가 또 다른 자살을 불러오는 이런 경향이 주로 첫 번째 자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첫 자살 사건을 크게 보도할 수록, 모방 자살의 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필립스는 신문 1면의 자살 사건 보도에 이어 나타나는 사망자 수의 증가 수치를 전부 ‘카피캣 자살’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도 자살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 중 일부가 자신의 생각을 망설임 없이 행동에 옮기면서 자살률이 급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간접적인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 다시 말해 평판을 잃지 않기 위해, 가족들의 고통과 수치를 덜어주려고, 가족들이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이 자살임을 밝히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자신이 타고 가는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필립스의 통찰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로, 그의 주장은 모든 통계자료를 정확히 설명해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한 교통사고가 모방 자살의 은밀한 측면이라면 자살 보도가 나온 뒤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자살 보도가 가장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가장 많은 사람에게 전달된 뒤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것도, 자살 보도가 이루어진 지역에서만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심지어 혼자 자살한 사건은 희생자가 한 명인 교통사고로, 총기 난사 등으로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은 희생자가 여러 명인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것까지 납득할 수 있다. ‘모방’이 핵심인 것이다.

 

필립스의 통찰에는 중요한 두 번째 특징이 있다. 필립스의 주장은 기정사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자살 보도 직후 비정상적으로 급증하는 교통사고가 정말 사고가 아니라 모방 자살이라면, 틀림없이 일반적인 사고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이라면 사고가 최대한 치명적이 되도록 (사고 직전 브레이크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밟는다든가, 비행기 기수를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한다든가) 조치를 취할 확률이 높다. 그래야 빠르고 확실한 죽음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스가 이런 예측을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검토한 결과, 신문 1면에 자살 보도가 나기 전보다 보도가 나고 나서 일주일 후 일어난 여객기 추락 사고의 경우 평균 사망자 수가 평소보다 세 배나 많았다. 자동차 사고의 경우에도 자살 보도 이후 일어난 사고의 사망률이 평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 1면에 자살 보도가 난 이후 발생한 교통사고의 경우 평소보다 사망률이 네 배나 높았다(Phillips, 1980).

 

이 현상의 배후에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작동한다면, 대대적으로 보도된 자살 사건의 주인공과 보도에 뒤이어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람들 사이에 확실한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고 필립스는 추론했다. 또한 이를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운전자 한 명이 차 한 대로 일으킨 교통사고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립스는 자살 보도 주인공의 연령대와 자살 보도 직후 혼자 어딘가에 충돌해 사망한 운전자들의 연령대를 비교해보았다. 예측은 다시 한 번 놀라울 정도로 적중했다. 자살 보도의 주인공이 젊은 사람이었을 때에는 혼자 자동차로 나무나 기둥, 제방 등에 돌진해 사망한 사람 대부분이 젊은 운전자였다. 그러나 자살 보도의 주인공이 나이 든 사람일 경우에는 그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대부분 나이 든 운전자였다(Phillips, 1980).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결정까지도 좌지우지했다. 필립스의 연구를 보면, 안타깝게도 자살 보도는 자살자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자살 동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사람의 자살을 통해 자신의 자살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비행기 납치 사건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졌고, 1980년대에는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주입하거나 거버 유아식에 유리 조각을 넣는 등 제품에 이물질을 투입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FBI 과학수사대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고 나면 평균 30건 정도의 유사 사건이 추가 발생했다(Toufexis, 1993).

 

고립된 원숭이

살인을 저질렀으니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결국 인민사원도 붕괴될 거라는 두려움에 빠진 존스 목사는 인민사원을 자기 식대로 끝장내기로 결심했다. 900명이 넘는 신도를 전부 모아놓고 집단 자살을 명령한 것이다.

 

존스타운을 탈출한 사람도 몇 명 있었고, 독약을 먹지 않고 저항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한 910명 대다수가 질서정연하게 앞으로 나와 자발적으로 독약을 마셨다.

 

그 특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먼저 다음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사교 집단이 가이아나 밀림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더라도 신도들이 존스 목사의 집단 자살 명령에 따랐을까?” 물론 현실성이 떨어지는 질문이지만, 한 인민사원 전문가는 망설임 없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UCLA에서 정신의학 및 생물행동과학 연구를 주도하며 신경정신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루이스 졸리언 웨스트(Louis Jolyon West) 박사는 존스타운에서 집단 자살이 일어나기 전 8년 동안 인민사원을 연구한 사교 집단 전문가였다. 사건 직후 이루어진 한 인터뷰에서 박사는 위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답변을 내놓았다. “인민사원이 캘리포니아에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적대적인 나라의 밀림 한복판에서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에 인민사원의 역사에서 신도들의 맹목적 복종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사건 발생 1년 전 낯설고 물 설은 나라의 밀림 한복판으로 본거지를 옮긴 일이었다. 만약 짐 존스가 소문처럼 정말 사악한 천재였다면 그런 이주가 신도들에게 심리적으로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지 틀림없이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서 살게 되었다. 남아메리카, 특히 가이아나의 열대우림 지역은 모든 면에서 샌프란시스코와 완전히 달랐다. 갑자기 맞닥뜨린 낯선 사회적ㆍ심리적 환경이 신도들한테는 틀림없이 매우 불확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불확실성이란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작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침 삼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가이아나라는 낯선 환경에 처한 인민사원 신도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행동을 가장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존스의 이주 전략이 그토록 기가 막힌 효과를 발휘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가이아나에서 존스타운 신도들이 따라할 만한 비슷한 사람은 존스타운 신도들밖에 없었다.

 

주목할 점은 그 순간 신도들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가지 중요한 사회적 증거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앞장서서 자발적으로 독약을 받아 마신 동료들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지배하는 집단에는 늘 그런 식으로 절대 복종하는 광신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솔선수범하라고 미리 존스한테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존스의 명령을 유난히 잘 따르는 사람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유야 어쨌든 그들의 행동은 엄청난 심리적 효과를 유발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자살 사건 보도에도 영향을 받아 모방 자살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면, 존스타운 같은 곳에서 함께 사는 이웃이 망설임 없이 자살을 택할 때 과연 얼마나 강렬한 영향을 받을지 생각해보라. 두 번째 사회적 증거는 신도들의 반응 그 자체이다. 당시 상황을 추측하건대 아마도 대규모의 다원적 무지 현상이 벌어졌던 듯하다. 신도들은 자살 명령을 받자마자 먼저 상황 판단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뭔가 행동을 취하는 대신 남몰래 다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만 하고 있었기에 모든 사람이 차분하게만 보였다. 신도들은 서로의 그런 반응을 보면서 순순히 독약을 받아 마시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신도들은 결국 집단적 오해에 지나지 않은 사회적 증거를 굳게 확신한 채, 가이아나의 열대밀림 속에서 끔찍이도 태연자약한 태도로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존스가 리더로서 보여준 진정한 재능은 한 개인이 갖는 리더십의 한계를 깨닫는 능력이었다. 어떤 리더도 혼자서 집단 구성원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다. 아무리 강력한 리더라도 집단 구성원 중 일부만 설득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부를 설득하고 나면, 이들 일부 구성원이 설득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 증거로 작용해 나머지 구성원들을 설득시킨다(Watts & Dodd, 2007). 따라서 가장 뛰어난 리더는 집단 구성원들을 적절히 조종해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대체로 사회적 증거에서 제공한 정보를 환영한다는 점이다. 보통은 유용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이기 때문이다(Surowiecki, 2004). 사회적 증거를 참조하면 모든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도 많은 결정을 손쉽게 내릴 수 있다.

 

정보 입력 차단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잘못된 정보 입력으로 작동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사회적 증거가 고의로 왜곡된 경우이다. 우리의 어떤 행동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우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회적 증거를 조작한다.

 

사회적 증거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오페라 「리골레토」를 감상하는 관객의 반응이든, TV 시트콤을 즐기는 시청자의 반응이든 얼마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것도 조작된 것이 분명한 증거를 갖고 말이다.

 

현대의 디지털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닌 듯 많은 판매회사들에서 컴퓨터로 조작한 목소리를 사용해 이득을 취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아마존닷컴에서 기존 독자들의 긍정적인 구매 후기 다섯 건을 들려줄 때 한 가지 합성음만으로 들려준 경우보다 합성음을 다섯 가지로 들려준 경우 훨씬 더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Lee & Nas, 2004).

 

물론 우리가 항상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장단점을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중요한 상황일 때나 자신의 전문 분야 등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상당히 광범위한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가장 유효한 정보로 사용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고의로 정보를 조작해 믿을 수 없게 해놓았다면, 우리도 반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가 한 가지 더 있다. 악의 없는 작은 실수가 눈덩이처럼 커다란 사회적 증거가 되어 우리를 잘못된 결정으로 이끄는 경우다. 응급 상황을 눈앞에 두고도 모든 사람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다원적 무지 현상이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버스 파업 사태로 그 은행 앞 버스정류장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이 원인이었다. 은행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을 부실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려는 은행 고객으로 착각한 행인들이 패닉에 빠져 너도나도 예금을 인출하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본 다른 행인들이 합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았던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극동 지역의 사회들은 서구 문명권보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Bond& Smith, 1996). 비단 극동 지역만이 아니라 개인보다 집단의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문화권이면 어디서나 동료의 선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일화들을 살펴보면 사회적 증거에 반응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거라고 가정한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일 때는 군중의 집단적 지혜를 무한 신뢰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둘째, 그러나 군중은 믿을 만한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 반응해 행동하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경마의 배당률은 경주마에 베팅한 금액에 따라 결정됩니다. 많은 돈을 베팅한 말이 우승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경마나 베팅 전략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출전한 말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 사람들은 대개 가장 인기 좋은 말에 베팅을 합니다. 배당률은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말이 가장 인기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도박꾼들이 배당률을 변경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먼저 가장 우승 확률이 높은 말을 한 마리 찍어둡니다. 다음엔 배당률이 15 대 1 정도로 우승 가능성이 희박한 말을 한 마리 고릅니다. 그리고 창구가 열리자마자 우승 가능성이 희박한 말에 100달러를 걸어 배당률을 2 대 1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그 우승 가능성이 희박한 말이 순식간에 가장 인기 좋은 말이 됩니다.

 

어떤 말에 베팅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게시판을 보면서 먼저 베팅한 사람들이 어떤 말을 선택했는지 관찰합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눈덩이 원리에 따라 가장 인기 좋은 말에 계속 배팅을 합니다. 바로 이때 도박꾼은 다시 창구로 가서 자신이 제일 먼저 찍어둔 우승 가능성이 높은 말에 크게 베팅합니다. 이 말은 워낙 인기가 없었기에 그제야 우승 확률이 높아집니다. 만약 이 말이 우승을 한다면 도박꾼은 처음 투자한 100달러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요약

  •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주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구매 결정, 기부, 공포증 치료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강력한 모방 행동을 보인다.
  •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두 가지 조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첫 번째 조건은 ‘불확실성’이다.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확신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런 행동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조건은 ‘유사성’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따라하는 성향이 있다.

 

 


PART 5. 호감의 원칙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의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주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잘 모르고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이 간단한 원칙을 이용해 우리한테서 온갖 허락을 받아낸다는 점이다.

 

타파웨어 사는 파티 주최자에게 매출의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함으로써 고객들이 낯모르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한테서’, 그리고 ‘친구를 위해서’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파티 참석자들은 친구가 제공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환대를 즐기면서 왠지 친구의 호의에 보답해야 할 듯한 부담감을 느낀다(Taylor, 1978). 소비자 연구 단체들도 타파웨어 홈파티의 위력이 파티 주최자와 손님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제품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친구와의 인간관계를 고려해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두 배나 많다는 것이다(Frenzen &Davis, 1990).

 

흥미로운 점은 홈파티 참석자들도 좋아하는 친구가 권하니까 어쩔 수 없이 타파웨어 제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별 상관없이 홈파티에 참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런 상황이 불편한데도 거절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설득의 달인 중 일부는 친구가 판매 현장에 없어도 우정이 발휘하는 효과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저 친구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정용품 방문판매 업체인 샤크리(Shaklee) 사는 영업사원들한테 ‘무한 체인’ 전략을 사용해 신규 고객을 발굴하라고 교육한다. 일단 고객이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 보이면, 얼른 제품을 소개하고 싶은 지인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졸라대는 것이다. 그렇게 알아낸 지인을 찾아가 제품을 판매한 다음, ‘또’ 그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는 식으로 고객 리스트를 무한 확장하는 방법이다.

 

이런 판매 방식이 성공을 거두려면 영업사원이 신규 고객을 방문할 때 ‘추천해준’ 친구의 이름을 들고 가는 것이 핵심이다. 친구 소개로 찾아온 영업사원을 문전박대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을 추천해준 친구를 문전박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샤크리 사의 판매 매뉴얼에는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이 전략을 적극 권유한다. “매우 중요한 판매 전략이다. 전화나 직접 방문으로 잠재 고객과 접촉할 때 ‘친구 되시는 아무개 씨께서 한번 방문해보라고 추천해주셨습니다’라고 말하면, 일단 50퍼센트는 성공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구매 결정의 주요 채널, 지인의 추천 (출처: 조선비즈)

설득하고 싶다면 친구가 되어라

사실 설득의 달인들은 아직 우정이 형성되지 않은 관계에서도 호감의 원칙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이런 경우에는 호감의 원칙을 이용하기 위해 상당히 직접적인 설득 전략을 사용하는데, 바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라르가 고객들에게 제공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바로 합리적인 가격과 왠지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은 호감 가는 영업사원이 되는 것이다. “그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지라르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마음에 드는 영업사원과 합리적인 가격, 두 가지만 있으면 거래는 성사됩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고객들이 왜 똑같이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다른 영업사원보다 지라르를 더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라르의 성공 전략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

신체적 매력

매력적인 외모가 사회생활에 유리하다는 점은 누구나 알지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그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 매력적인 사람들은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Olson & Marshuetz, 2005). 대부분의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이 그렇듯 이 반응 또한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데, 사회과학자들은 이런 반응을 일종의 ‘후광 효과(halo effect)’로 본다. 후광 효과란 한 사람의 긍정적인 특성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달라 보이게 하는 효과로, 신체적 매력도 바로 그런 특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자동적으로 능력 있고, 친절하고, 정직하고, 지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Langlois et al., 2000). 하지만 상대의 신체적 매력이 자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매력적인 사람은 구직 때뿐만 아니라 급여를 받을 때도 유리하다.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캐나다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매력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급여가 평균 12~14퍼센트 높았다(Hammermesh & Biddle, 1994).

 

심지어 재판 결과까지 몸매와 외모의 영향을 받는다는 불안한 연구 결과가 있다.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은 법 집행 과정에서도 매우 호의적으로 대접받을 확률이 높다(Castellow, Wuensch, & Moore, 1991; Downs & Lyons, 1990).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서는 형사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연구진이 남성 피고인 74명의 신체적 매력을 평가했다. 나중에 각 피고별 재판 결과를 확인해보니 잘생긴 피고가 확실히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력적인 피고인은 그렇지 않은 피고인보다 징역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뉴욕 주의 교도소 몇몇 곳에서 안면 손상이 있는 재소자 몇 명을 골라 성형수술을 시킨 다음, 그중 일부에게는 (상담이나 직업교육 같은) 사회적응 훈련을 제공했고, 나머지 일부에게는 제공하지 않았다. 이들이 출소한 후 1년이 지나서 이들 각각의 행적을 추적해본 결과 (마약 중독자를 제외하면)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감옥에 재수감된 확률이 눈에 띄게 낮았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은 사회적응 훈련 여부와 무관하게 재수감 확률이 낮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일부 범죄학자들이 외모에 문제가 있는 재소자들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드는 사회적응 훈련 대신 성형수술을 제공하는 편이 효과적일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형수술을 해주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적어도 사회적응 훈련을 제공한 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실시한 연구(Stewart, 1980) 결과를 보면, 성형수술로 재소자를 교화한다는 생각은 착각일 가능성도 있다. 범죄자의 외모가 매력적으로 바뀌면 재범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재범 이후 재판 과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줄어드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벤슨과 동료 연구진의 연구에서는 외모가 매력적인 남녀는 이성은 물론이고 동성에게서도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예외가 있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매력적인 사람이 로맨틱한 관계에서 자신의 경쟁자가 되는 경우뿐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를 제외하면 확실히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더 많은 호감을 얻었고, 더 높은 설득력을 발휘했으며, 더 자주 도움을 받았고, 성격이 더 좋고 지적 능력도 더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매력적인 사람들 가운데 외모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만큼 자신의 성격이나 능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은 매력과 자존감 사이에 강력하고 분명한 비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그럴듯한 설명도 제시했다. 몇몇 작가가 제공한 증거에 따르면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 성격과 능력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모라는 ‘후광’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Major, Carrington, & Carnevale, 1984). 결과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 중에 이런 모순적인 정보를 접하면서 자아 개념이 불확실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이성에게 더욱 끌린다는 설문 응답 (출처: 정오의 데이트)

유사성

외모가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설득의 달인들과 연구자들은 외모 외에도 호감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알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유사성’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좋아한다(Burger et al., 2004).’ 비슷한 부분은 의견이나 성격, 배경, 라이프스타일 등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복장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복장이 비슷한 사람을 도와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유사성을 강조해 상대의 호감과 승낙을 끌어내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배경이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척하는 것이다. 한 예로 중고차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신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들의 경우, 고객의 중고차를 살펴보면서 고객과의 유사성을 찾으라고 훈련받는다. 영업사원이 만약 당신의 트렁크에서 캠핑 장비를 발견한다면, 자신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도시에서 벗어나 여행 다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유사점 언급 방법은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다(Burger et al., 2004). 한 보험회사의 보험계약 기록을 분석한 결과, 고객들은 자신과 나이, 종교, 정치적 성향, 흡연 습관 등이 비슷한 영업사원과 계약을 맺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Evans, 1963).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우편으로 설문을 요청할 때 아주 작은 부분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응답률을 상당히 높였다. 바로 설문 조사자의 이름을 응답자의 이름과 비슷하게 바꿔놓은 것이다. 로버트 그리어(Robert Greer)에게 설문 응답을 요청할 때는 요청자의 이름을 밥 그리거(Bob Gregar)로, 신시아 존슨(Cynthia Johnson)에게 설문 응답을 요청할 때는 요청자의 이름을 신디 조한슨(Cindy Johanson)으로 바꿨다. 각기 다른 두 가지 연구에서 이런 식으로 이름에 약간의 변화를 주자 설문 응답률이 거의 두 배로 높아졌다(Graner, 2005). 한편으로 사소해 보이는 이런 유사성은 보험계약이나 설문 응답과 같은 단순한 선택을 넘어서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정도의 중요한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Jones et al., 2004). 뿐만 아니라 응급실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었다. 신장 질환으로 입원한 응급 환자의 치료 순서를 결정할 때도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환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했다(Furnham, 1996).

 

한 연구에서 서로 비슷하다며 접근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밝혔는데, 바로 자신이 비슷한 사람에게 얼마나 호감을 느끼는지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Gozales,Davis, Loney, Lukens, & Junghans, 1983).

 

칭찬

배우 맥클린 스티븐슨(McLean Stevenson)은 자신이 결혼하게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내가 저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는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교훈이 담겨 있다. 누군가 우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좋아하게 되고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Berscheid & Walster, 1978; Howard, Gengler, & Jain, 1995, 1997).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1년에 열두 번, 시계처럼 정확히 고객의 우편함에 도착했다. 물론 1만 3,000명의 고객들이 똑같은 말이 새겨진 똑같은 카드를 받았다. 오로지 자동차 판매를 위해 제작한 그토록 비개인적인 사랑의 말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조 지라르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고, 지라르 같은 영업의 천재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우리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지라르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면을 이해했다. 인간이란 바로 아부에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런 아부가 우리를 조종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확신이 들 때는 약간 조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대체로 남의 칭찬을 별로 의심치 않고 칭찬해주는 사람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는다.

 

칭찬 내용이 꼭 사실일 필요가 없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일단 아부꾼의 칭찬을 들은 사람들은 아부꾼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칭찬만 들으면 자동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므로 호감을 얻으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칭찬에도 쉽게 넘어간다.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년 15만 통이 넘는 ‘고객님, 사랑합니다’ 카드를 보내는 지라르의 노력과 비용이 별로 어리석거나 낭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접촉과 협조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런 성향은 선거를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Grush, 1980; Grush, McKeough, & Ahlering,1978). 투표소에 가보면 그저 이름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상당히 많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익숙한 것에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대상과 자주 접촉할수록 그 대상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한 예로 어느 실험에서 피험자들을 스크린 앞에 앉혀놓고 몇 사람의 얼굴을 잠깐씩 보여주었다. 얼굴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도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 피험자들은 화면에 얼굴이 더 자주 나타났던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보였다. 호감은 또한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 화면에 얼굴이 더 자주 나타난 사람일수록 피험자에게 더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Bornstein, Leone, & Galley, 1987).

 

온라인 광고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일어난다. 피험자가 읽고 있는 인터넷 기사 상단에 카메라 배너 광고를 각각 다섯 번, 스무 번,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실험을 했더니, 피험자들은 광고를 봤다는 인식조차 못한 상황에서도 광고가 자주 나타날수록 카메라에 대해 더 큰 호감을 보였다(Fang, 2007).

 

인종 통합교육 문제를 잠시 살펴보자. 접촉을 늘려 인종 간 화합을 이루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만한 성과가 없었던 것은 그 주장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 완전히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학교는 한 인종 집단의 아이들이 다른 인종 집단의 아이들과 똑같이 서로 어울리며 지내는 ‘멜팅 팟(Melting Pot)’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인종 통합교육을 실시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인종이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인종끼리 무리지어 몰려다닐 뿐이다(Dixon et al., 2005; Oskamp & Schultz, 1998). 둘째, 인종 간 접촉이 늘어난다 해도 반복적인 접촉으로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그것을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불쾌한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나 대상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다 보면 오히려 호감이 떨어질 수 있다(Richeson & Shelton, 2007; Swap, 1977; Zajonc, Markus, & Wilson, 1974). 전형적인 미국 학교 교실은 오히려 이런 불쾌한 상황을 조장하는 곳이다.

 

다행인 점은 교육 전문가들이 내놓은 ‘협동 학습’이라는 개념에서 인종 간 반목을 줄일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인종 통합 학급에서 편견이 높은 이유의 상당 부분이 상대 집단을 지속적인 경쟁자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므로, 이들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중심되는 새로운 학습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캠프 실험

소년들 사이에 어떤 악의를 조장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숙소인 오두막을 둘로 분리하기만 해도 양 집단 간에 ‘우리 대 저들’이라는 감정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었고, 양 집단에 각각 이름을 짓게 하자(독수리 대 방울뱀) 경쟁의식은 더 격화되었다. 소년들은 상대 집단의 능력과 성과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진이 일부러 두 집단의 경쟁적인 활동을 도입하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적대적인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저 집단을 나눠놓고 잠시 기다리며 적대감이 쌓이기를 지켜보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집단을 한데 모아놓고 경쟁적인 활동을 계속 부과한다. 그러면 집단 간에 미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연구진은 두 집단이 경쟁을 하면 둘 다 손해를 보고, 협동을 하면 둘 다 이익을 보는 상황을 마련했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해 성공을 거두자 두 집단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오래지 않아 말싸움이 잦아들고, 줄을 설 때마다 벌어지던 몸싸움도 멈췄으며, 식당에서도 다른 집단 소년들과 섞어 앉기 시작했다. 더욱이 친한 친구 이름을 적으라고 하자, 전에는 자기 집단 소년들의 이름만 적던 아이들이 다른 집단 소년들의 이름도 적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다른 집단 아이들에 대한 첫인상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그런 식으로 친구들을 재평가할 기회를 준 연구진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연구진이 두 집단에 공동으로 추구할 목표를 부과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다 보니 마침내 경쟁 집단의 구성원들이 나를 도와주는 소중한 친구이자 합리적인 동료, 또 그런 친구들의 친구들로 보이게 된 것이다(Paolini et al., 2004; Wright, Aaron, McLaughlin-Volpe, & Ropp, 1977). 서로 협력해 성공을 일궈냈기에, 그 성공을 함께한 동료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유지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학교에 적용하기

인종 통합교육이 여러 인종 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의 핵심은 무엇일까? 첫째, 잦은 접촉으로 익숙해지면 서로에 대한 호감이 커지지만, 만약 접촉으로 불쾌한 경험을 한다면 정반대의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종이 다른 아이들을 전형적인 미국 교실의 무한경쟁 분위기 속에 던져넣으면 당연히 적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상해야 한다. 둘째, 모둠 중심의 협동 학습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협력을 통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설득의 달인들은 모든 종류의 협력을 이용한다. 어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할 기회,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할 기회, 무엇보다 우리의 동료로 보일 기회를 잡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쁜 경찰관 착한 경찰관’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를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먼저 나쁜 경찰관이 무거운 형량을 언급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악의에 차서 광분하는 나쁜 경찰관과 비교하면 인지적 대조 원리(‘PART 1’ 참조)에 따라 착한 경찰관은 ‘유난히’ 합리적이고 친절한 사람으로 보인다(Kamisar, 1980). 또한 자기 돈으로 커피까지 대접하는 등 착한 경찰관이 거듭 용의자 편을 들어주면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용의자는 보답하려는 마음이 든다(Rafaeli & Sutton, 1991). 하지만 이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착한 경찰관이 용의자 편이 되어주고, 용의자의 행복에 마음을 써주며, 용의자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이 용의자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는 거의 구세주나 마찬가지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범죄를 자백한다.

 

 

조건화와 연상작용

고대 페르시아나 현대 미국이나 같은 원칙, 즉 나쁜 소식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까지 전염시킨다는 원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들은 불쾌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소식만 전했을 뿐 전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그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Manis, Cornell, & Moore, 1974).

 

연상의 원칙은 일반 원칙이므로 부정적인 연상과 긍정적인 연상 모두에 적용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악의 없는 연상작용은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Lott & Lott, 1965).’

 

부모는 연상작용에 따라 나쁜 친구 옆에만 있어도 똑같이 나쁜 아이로 보인다는, 즉 연상 원칙의 부정적인 측면을 이해한 셈이다. 부모들의 충고는 옳다. 사람들은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끼리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Miller, Campbell,Twedt, & O’Connell, 1966).

 

설득의 달인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어떻게든 관련 지으려고 애를 쓴다. 자동차 광고에는 왜 매력적인 모델이 반드시 함께 등장할까? 광고주들이 모델의 긍정적인 특징인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이 자동차로 전이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볼 때마다 자동적으로 매력적인 모델을 연상해 동일한 반응을 보이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신용카드라는 결제 수단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심리적 효과를 발휘한다. 상품과 서비스의 혜택은 즉시 제공하되 비용의 지불은 몇 주일 후로 연기해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신용카드와 카드의 상표, 상징, 로고 등을 접하면서 소비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떠올린다.

 

첫 번째 실험에서 식당 고객들은 현금보다 신용카드로 식대를 결제할 때 더 후한 팁을 내놓았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을 실험실에 모아놓고 통신 판매 카탈로그를 제공한 뒤 구매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마스터카드 로고가 붙어 있는 실험실에서 구매 결정을 내린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물품 구매 금액이 평균 29퍼센트 높았다. 더욱이 학생들은 마스터카드 로고가 실험의 일부분인지 인식하지도 못했다.

 

마지막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라는 자선단체에 기부를 요청했는데, 실험실에 마스터카드 로고가 붙어 있을 때의 기부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87퍼센트 대 33퍼센트). 마지막 실험 결과를 보면 연상 원칙이 무의식적 승낙을 이끌어내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부는 신용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이루어졌는데도 마스터카드 로고가 실험실에 있다는 이유(그리고 그에 따른 긍정적 연상작용)만으로 학생들이 더 많은 ‘현금’을 내놓은 것이다.

 

신용카드와 관련해 부정적인 기억이 있는 사람들, 전년도에 연체 이자를 너무 많이 냈다는 등의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서는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신용카드 로고가 있을 때 오히려 더 보수적인 소비 성향을 보였다.

최근 연구자들은 ‘세일’이라는 간판을 내걸기만 해도(실제로는 할인이 되지 않아도) 매출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고객들이 의식적으로 ‘아, 세일이니까 싸게 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간판들은 과거에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했던 경험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다시 구매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세일’ 간판과 관련한 제품에 대해서는 자동적으로 더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Naylor et al., 2006).

 

기업들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되려고 수백만 달러를 지불한다. 공식 후원사가 되고 나서는 그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들인 비용을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을 만큼의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잡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소비자의 3분의 1 정도가 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제품을 더 구매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광고주들이 연상 원칙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또 다른 방법은 유명 인사들을 제품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프로 운동선수들은 많은 돈을 받고 자기 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제품(운동화, 테니스 라켓, 골프 공 등)이나 전혀 관련이 없는 제품(청량음료, 팝콘 냄비, 팬티스타킹 등)의 기업과 광고 및 후원 계약을 맺는다. 광고주들에게는 그렇게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관계가 논리적으로 보일 필요는 전혀 없다. 긍정적이기만 하면 된다.

 

파블로프의 조건화 실험 (출처: 아시아경제)

파블로프라는 이름이 종을 울릴까?

라즈란은 ‘오찬 기법’이라는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식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이나 겪은 일에 더 호감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의 관심사와 가장 관련 있는 실험(Razran, 1940) 하나를 예로 들면,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정치적 슬로건을 들려준 다음 각 슬로건에 대한 지지도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피험자들은 식사를 하면서 들었던 정치 슬로건에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그러나 피험자 본인들은 식사를 하면서 들었던 슬로건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때, 이런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듯하다.

 

불쾌한 경험에도 연상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라즈란은 피험자들에게 정치 슬로건을 보여주면서 실험실 안에 역겨운 냄새를 유입시키는 실험도 실시했다(1940). 그러자 정치 슬로건에 대한 지지율이 감소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냄새도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의식적으로 기분 좋거나 기분 나쁜 냄새를 맡게 하면서 여러 가지 얼굴 사진을 보여준 결과, 냄새에 따라 사진 속 얼굴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 또는 감소했다(Li et al., 2007).

 

라즈란은 파블로프의 고전적인 실험에서 오찬 기법을 쉽게 이끌어냈다. 음식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 연상작용을 통해 다른 대상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은 파블로프의 실험에서 분명히 밝혀졌다. 하지만 음식을 보면 나타나는 반응에는 침 분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마주하는 순간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맛있는 음식을 어떤 대상(한 예가 정치적 슬로건이었다)과 연결시키면, 음식에 대한 좋은 감정과 긍정적인 태도를 다른 대상으로 전이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보았다.

 

기상 예보부터 스포츠까지

사람들은 연상 원칙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최대한 긍정적인 사건과는 관련을 맺으려 하고, 부정적인 사건과는 자신이 일으킨 사건이 아닐지라도 거리를 두려 한다.

 

유명한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75)는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자신과 성별, 문화, 지역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은 바로 ‘자신’을 의미한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자신’도 이긴다.” 운동 경기는 경기 자체만을 즐기는 가벼운 기분 전환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우리는 자신과 연관 있는 스포츠 팀이 승리해 우리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입증하려는 것일까? 우리 자신, 그리고 당연히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입증하려는 것이다. 연상 원칙에 따르면 아무리 피상적인 관계(예를 들면, 거주 지역)라도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이나 팀이 승리를 거두면, 자신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이 승자 또는 패자와의 관계를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긍정적인 관계는 과시하고 부정적인 관계는 은폐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높은 평가와 호감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이를 목적으로 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면서도 널리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대명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팀이 패배한 경기 결과를 질문했고, 또 다른 한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다른 경기, 즉 애리조나 주립대학 팀이 승리한 경기 결과를 물었다. 동료 연구자인 에이브릴 손(Avril Thorne)과 나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비율을 기록했다. 기록한 결과를 정리해보니 애리조나 주립대학 팀이 승리한 경기를 묘사할 때는 확실히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해 “우리가 휴스턴을 17 대 14로 이겼어요” 또는 “우리가 이겼어요” 등 팀의 승리와 자신을 연결 지으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러나 애리조나 주립대학 팀이 패배한 경기 결과를 알려주는 학생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배한 팀과 거리를 두려는 표현, 즉 “그들이 미주리 대학에 30 대 20으로 패했어요” 또는 “점수는 잘 모르겠지만, 애리조나가 졌어요” 등과 같이 표현했다.

 

‘후광 반사 효과(bask in reflected glory)’를 누리려는 성향은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갖고 있지만, 이런 성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면이 있는 듯하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그 사람들은 단순한 스포츠 광팬이 아니라 성격에 숨겨진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자존감 부족이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는 탓에 자신이 직접 뭔가를 달성하는 상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달성한 일에 자신을 연관 짓는 데서 성취감을 느낀다.

 

약간 다른 방식으로 연상 원칙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자신과 연관 지어 과시하려 애쓰는 대신에, 자신과 실제로 관련이 있는 누군가를 성공시키려고 노력한다. 자녀를 스타로 만들려고 동분서주하는 악명 높은 ‘매니저 엄마’들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호감의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호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작동하기 전에 미리 알아채고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작동하도록 내버려둔다. 설득의 달인을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하는 호감 유발 요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설득의 달인을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특정 상황에서 특정 설득의 달인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감을 느끼면 바로 그 순간 방어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설득의 달인들과 접촉할 때 호감과 관련해 오직 한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빨리, 그리고 깊이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일단 그런 느낌이 든다면, 뭔가 술책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당장 필요한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부탁이나 거래 등을 승낙할 때는 항상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을 부탁이나 거래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일단 상대와 약간이라도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접촉을 하면 구분이 흐려지기 쉽다. 물론 상대에 대해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구분이 흐려져도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에는 큰 실수를 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런 호감을 감지하면 즉시 상대가 제시하는 거래와 상대를 분리해 생각하면서, 오직 거래 조건만으로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과정만 유의한다면, 설득의 달인들과 거래할 때마다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요약

  •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의 부탁은 더 잘 들어준다.’
  • 전반적인 호감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가 ‘신체적 매력’이다.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이 사회생활에 유리하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 호감과 승낙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요인은 ‘유사성’이다. 우리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의 부탁에는 자신도 모르게 승낙한다. 호감도를 높이는 세 번째 요인은 ‘칭찬’이다. 너무 노골적인 칭찬은 이따금 역효과를 일으키지만 칭찬을 하면 대체로 호감도와 승낙률이 높아진다.
  • 반복적인 접촉으로 ‘익숙함’이 커져도 대체로 호감도가 높아진다. 물론 부정적인 접촉보다는 긍정적인 접촉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효과가 좋은 긍정적인 상황은 서로 협동해 어떤 일에 성공하는 경우다. 호감도를 높이는 다섯 번째 요인은 ‘연상’이다. 광고주나 정치가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사 제품을 긍정적인 것들과 관련 지음으로써 연상작용으로 긍정적인 측면을 공유하려 한다.
  • 상대에게 호감이 지나치게 느껴진다는 판단이 들면 일단 상호작용을 멈추고, 상대와 상대의 제안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제안이나 부탁만을 평가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PART 6. 권위의 원칙

피험자 중 한 명은 ‘학생’ 역할을 맡아 둘씩 짝지은 여러 개의 단어 쌍을 배운 다음 최대한 완벽하게 암기해야 한다. 나머지 한 명의 피험자는 ‘선생’ 역할을 맡아 학생이 단어를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테스트하면서 학생이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한다.

 

 

명령 복종 (출처: 한경닷컴)

명령에 대한 인간의 행동 패턴

스탠리 밀그램이라는 심리학과 교수가 실시했던 실험(1974)으로, 선생 역할을 맡은 피험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학생들에게 매우 위험한 수준의 전기 충격을 지속적으로 가했다. 실험에서 실제가 아니었던 것은 딱 하나, 전기 충격뿐이었다.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한 학생들은 진짜 피험자가 아니라 연구진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선생 역을 맡은 피험자가 레버를 당길 때마다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연기했던 것이다. 밀그램의 연구 목적은 처벌이 학습과 기억에 미치는 영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실은 전혀 다른 실험이었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죄도 없는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고통을 가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밀그램은 실험 시작 전에 동료들과 예일 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을 모아놓고 실험 방법을 미리 알려준 다음, 마지막 450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하는 피험자가 몇 명일지 예측해보도록 했다. 대부분 1~2퍼센트 정도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심리치료사 39명에게 물어본 결과도 마지막 단계까지 실험을 계속할 사람은 1,000명 중에 1명 정도밖에 없을 것으로 나왔다. 실제 실험 결과와 같은 행동 패턴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밀그램은 그 정답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바로 권위에 대한 뿌리 깊은 복종심이었다. 밀그램에 따르면 그런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은 피험자들이 윗사람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험복 차림의 권위적인 연구자가 피험자한테 ‘선생’의 의무를 다하라고 강요하고, 필요한 경우 명령까지 서슴지 않자 피험자들은 희생자들의 신체적ㆍ감정적 고통을 보면서도 감히 연구자에게 반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연구자가 실험을 계속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피험자들은 틀림없이 실험을 일찍 중단했을 것이다. 피험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싫어했고,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괴로워했다. 연구자에게 실험을 중단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연구자가 거절하자 어쩔 수 없이 실험을 계속 진행하긴 했지만, 몸을 벌벌 떨고 진땀을 흘리면서 제발 희생자를 풀어달라고 여러 차례 항의하고 부탁했다.

 

밀그램은 후속 연구에서 연구자와 ‘학생’의 대본을 바꿔 연구자는 ‘선생’에게 전기 충격을 멈추라고 지시하는 반면, 희생자인 학생이 선생에게 괜찮으니까 실험을 계속하라고 요구하도록 했다. 결과는 너무도 명확했다. 아무리 동료 피험자가 전기 충격을 계속 가하라고 말해도, 그 말에 따라 실험을 계속한 피험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엔 연구자 두 명이 선생 역할을 맡은 피험자에게 서로 모순되는 명령을 내렸다. 한 연구자는 희생자가 풀어달라고 소리를 지르면 전기 충격을 중단하라고 명령한 데 반해, 다른 연구자는 그래도 실험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식으로 모순되는 명령을 내리자 이 끔찍한 실험에서 처음으로 약간 유머러스한 결과가 나왔다. 희비극적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 피험자는 두 연구자를 번갈아 보면서 제발 두 사람이 같은 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두 연구자가 언쟁을 계속하자 피험자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진짜’ 권위를 찾아 복종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피험자는 결국 자신의 본능에 따라 전기 충격을 멈췄다.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인간은 권위적인 사람의 명령이라면 아무리 극단적인 수준이더라도 그 수준까지 따르려 한다는 사실이 분명하다(Milgram, 1974).” 그러니 정부라는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권위가 평범한 국민들에게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수준의 복종을 끌어낼 수 있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맹목적 복종의 매력과 위험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강력한 동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 역시 인간의 사회조직을 잠깐만 살펴보면 그 존재 이유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사회 전반에 체계적인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으면 유익한 점이 매우 많다. 자원을 생산하고, 거래하고, 적군을 방어하고, 사회를 확장하고 통제하는 정교한 구조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계질서의 반대 개념은 ‘무정부 상태(anarchy)’다. 무정부 상태에서는 어떤 문화적인 혜택도 받기 어렵다. 사회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무정부 상태가 인간의 삶을 ‘외롭고, 궁핍하며, 비참하고, 야만적’으로 몰고 갈 거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올바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복종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배우며 성장한다.

 

우리는 의식적인 고려 없이 ‘누르면, 작동하는’ 방식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경우가 많다. 권위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지름길 삼아 자신의 행동을 곧장 결정해버린다.

 

어른이 되면 권위자가 고용주나 판사, 정부 지도자 등으로 대체되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이런 권위자들을 따르는 것이 유익하다. 권위자들은 사회적 지위 덕분에 더 많은 정보와 힘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의 요구에 따르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런데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다 보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명령에도 그대로 따르는 사태가 벌어진다.

 

의료계는 권력과 명예의 위계질서가 확실한 곳이다. 의료업계 종사자들은 자신이 위계질서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인식하고 있으며, 위계질서의 맨 꼭대기에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다. 의사가 어떤 질환에 대해 진단을 내리면, 그보다 지위가 높은 의사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의료계에는 의사의 명령에 무조건 자동 복종이라는 불문율이 확립되어 있다.

 

귀 염증인데 항문에 투약을 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처방이었는데도 환자나 간호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일화의 중요한 교훈은 합법적인 권위자의 말은 비합리적이고 이상하다 할지라도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직접 전체 상황을 파악하는 대신 권위자의 말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의료나 살림 이외의 분야에서도 가짜 전문가들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권위의 원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2001년 1월 24일 배우 마틴 쉰(Martin Sheen)과 인터뷰를 하던 NBC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Brian Williams)는 대통령이 퇴임 직전 고가의 선물을 받거나 범죄자를 사면하는 것이 적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마틴 쉰은 성실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지만, 사실 그 문제에 대한 마틴 쉰의 경험은 TV 시리즈 「웨스트 윙(West Wing)」에서 미국 대통령 역할을 맡은 것이 전부였다.

 

 

내용보다 암시

로버트 영의 상카 커피 광고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실제 권위자, 즉 의사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권위의 원칙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권위자인 척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서 권위 있는 인물에게 보이는 우리의 자동반응과 관련해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은 실제 권위자뿐 아니라 단순한 권위의 상징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일어난다.

 

직함

직함은 실제로 획득하기가 가장 어렵지만, 사칭하기엔 가장 쉬운 권위의 상징이다. 보통 어떤 직함 하나를 얻으려면 여러 해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전혀 그런 노력 없이도 적당한 직함을 잘만 사칭하면 자동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TV 광고 모델이나 사기꾼들이 그런 경우다.

 

연구에 따르면 직함은 키에 관한 인식에도 왜곡을 일으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키도 커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의 5개 학과 학생들에게 한 남자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온 방문객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남자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학과별로 다르게 소개했다. 첫 번째 학과에는 남자를 학생으로 소개했고, 두 번째 학과에는 대학원생으로, 세 번째 학과에는 시간 강사로, 네 번째 학과에는 전임 강사로, 다섯 번째 학과에는 정교수로 소개했다. 남자가 강의실을 나간 뒤 학생들에게 남자의 키를 어림해달라고 부탁했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위가 한 단계씩 높아질수록 학생들이 인식한 남자의 키가 평균 약 1.2센티미터씩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교수’일 때의 남자는 ‘학생’일 때보다 6센티미터가 커 보였다(P. R.Wilson, 1968).

 

키와 지위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면, 당연히 키를 이용해 지위를 높여보려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보통 힘이 강한 동물이 지위가 높아, 체구는 동물의 집단에서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연구에 따르면 데이트 상대를 구할 때도 큰 키가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들은 구혼 광고에 키가 크다고 밝힌 남성한테 답장할 확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여성의 경우 키가 정반대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오히려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고 밝힌 여성이 남성의 답장을 더 많이 받았다(Lynn & Shurgot, 1984; Shepperd & Strathman, 1989).

 

물리적인 충돌은 집단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많은 동물 종은 실제로 맞붙어 싸우기보다는 체구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두 마리의 적수가 마주 서서 자신의 힘과 공격성을 과시하는데, 이때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몸집을 부풀리는 기술이다. 포유류는 주로 등을 둥글게 구부리고 털을 바짝 세운다. 어류는 지느러미를 활짝 펼치고 물을 이용해 몸집을 키운다. 조류는 날개를 활짝 펴고 파닥거린다. 이런 식으로 몸집만 부풀려도 약자는 더 크고 강해 보이는 쪽에 승리자의 자리를 넘겨주고 조용히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외과, 내과, 소아과, 정신과 등 다양한 병동 간호사실에 소속된 간호사 22명에게 똑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걸었다. 의사라고 신분을 밝힌 다음, 특정 병동의 한 환자에게 에스트로겐(Astrogen) 20밀리리터를 투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투약 지시에는 간호사들이 의심할 만한 요인이 네 가지나 있었다. 첫째, 전화로 처방을 내리는 것은 병원 규정 위반이었다. 둘째, 공인받지 않은 약물이었다. 에스트로겐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아직 병동에 배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셋째, 처방 용량이 분명 위험 수위를 넘어 있었다. 약품 포장에는 ‘하루 최대 투약량’이 처방 용량의 절반인 10밀리그램으로 적혀 있었다. 넷째, 처방을 내린 의사는 간호사가 알지도, 만나지도, 심지어 전화 통화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95퍼센트에 달하는 간호사들이 곧장 병동 약제실로 가서 처방받은 분량의 에스트로겐을 챙겨 환자에게 투약하려고 병실로 향했다.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지적인 전문가’의 자격을 포기하고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으로 이동해버렸다. 자신의 할 일을 결정하는 데 자신이 가진 상당한 의학 지식과 경험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자동 복종 과정을 거쳐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의 업무 환경에서는 합법적인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항상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복종 성향이 너무 지나치다 보니 진짜 권위자도 아니고 가장 쉽게 권위자를 사칭할 수 있는 상징, 즉 의사라는 직함 하나만으로도 자동반응을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권위를 상징하는 제복 (출처: pixabay)

복장

두 번째 권위의 상징은 복장이다. 물론 복장은 직함보다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직함만큼 위조하기 쉽다. 경찰서에 가보면 변화무쌍한 복장으로 사람들을 속인 사기 사건이 넘쳐난다. 사기꾼들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의사의 하얀 가운, 성직자의 검은 제복, 군인의 녹색 군복, 경찰관의 파란 제복 등으로 갈아입는다. 복장은 결코 권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희생자들이 가슴을 칠 때쯤이면 사태는 이미 회복 불능 상태인 경우가 많다.

 

평상복 또는 보안요원 복장인 연구자가 행인을 멈춰 세운 다음 약 15미터 전방의 주차 요금 징수기 옆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요금 징수기 옆에 서 있는 남자 보이죠? 주차 시간이 넘었는데 잔돈이 없다고 합니다. 가서 동전 좀 빌려주세요!” 말을 마친 연구자는 바로 모퉁이를 돌아 걸어갔고, 행인이 요금 징수기 앞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제복의 위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속되었다. 연구자가 보안요원 제복을 입었을 때는 거의 모든 행인이 지시를 이행한 반면, 평범한 복장일 때는 지시를 따른 행인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대학생들에게 실험 내용을 미리 공개하고 결과를 예측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일상복 차림의 연구자가 부탁했을 때 행인들이 얼마나 지시에 따를 것인지 매우 정확하게 예측했다(학생들의 예상은 50퍼센트, 실험 결과는 42퍼센트). 그러나 보안요원 제복 차림의 연구자가 부탁했을 때 지시에 따를 행인들의 비율에 대해서는 상당히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학생들의 예상은 63퍼센트, 실험 결과는 92퍼센트).

 

장식

반드시 제복이 아니더라도 장식적인 목적으로 잘 차려입은 의상은 일반적인 권위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고급스러운 의상을 멋지게 차려입으면 사회적 지위와 부를 과시할 수 있는데, 값비싼 보석이나 최고급 자동차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운전자들은 최고급 신차가 초록 신호 앞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때 낡은 소형차가 꾸물거릴 때보다 훨씬 오랫동안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물론 앞차가 소형차인 경우에는 거의 모든 운전자가 가차 없이 경적을 울렸으며, 그것도 대부분 두 번 이상 울렸다. 심지어 꾸물거리는 앞차의 범퍼를 들이받은 차도 두 대나 있었다. 그러나 앞차가 고급차인 경우 절반 정도의 운전자가 앞차의 위세에 눌려 경적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Doob & Gross, 1968).

 

권위의 압력과 관련한 다른 연구에서도 계속 동일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밀그램의 연구, 중서부 지역 병원 간호사에 관한 연구, 보안요원 제복 관련 연구 등에서도 사람들은 권위의 영향력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매우 과소평가했다. 아마도 권위의 원칙이 그토록 강력한 설득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특징, 즉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사람들이 그 영향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권위의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신뢰할 만한 권위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야 할 때와 따르지 말아야 할 때를 결정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권위적인 인물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라. “권위를 행사하려는 이 사람이 정말 전문가인가?” 이 질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권위자가 신뢰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와, 그 자격이 당면한 현안과 관련이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이런 방법으로 상대의 권위를 입증할 증거를 찾다 보면 우리는 자동 복종이라는 심각한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르는 상징으로부터 관심을 돌려 권위자의 진짜 자격을 고려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질문은 당면한 현안과 관련이 있는 권위와, 관련이 없는 권위를 구분하게 해준다.

 

교활한 진실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전문가는 얼마나 진실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아무리 최고 수준의 전문가라 해도,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정직하게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가 얼마나 진실하게 행동하는지 고려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많은 경우 그런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은 이득을 취하려는 전문가보다 공명정대해 보이는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한다(Eagly, Wood, & Chaiken,1978). 이런 경향은 지역(McGuinnies & Ward, 1980), 연령(Mills & Ward, 1980)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전문가가 우리를 설득해 어떤 이득을 취하려는지 한 번쯤 의심해보면, 필요 이상의 자동 복종으로 손해를 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아무리 특정 분야에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의 말이라 해도 뭔가 진실성이 부족해 보일 때는 설득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Van Overwalle & Heylighen, 2006).

 

권위자 자신의 이익에 거스르는 주장을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잘만 사용하면 자신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는 미묘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처음엔 자신의 입장이나 제품의 작은 결점을 언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부차적인 결점을 만회할 수 있는 훨씬 중요한 장점을 부각시킨다. “어비스, 2등이기에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 “로레알, 조금 비싸지만 제값을 합니다.” 이런 술책을 사용하는 설득의 달인들은 사소한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더 중요한 문제에서 큰 신뢰를 얻는다(Hunt, Domzal, & Kernan, 1981; Settle & Gorden, 1974; Ward& Brenner, 2006).

 

8~12명의 단체손님을 대할 때 그는 자신에게 손해가 될 법한 행동으로 환심을 샀는데, 거의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했다. 보통 빈센트는 일행 중 여자 손님이 첫 번째 주문을 하려는 순간 행동에 돌입했다. 여자 손님이 어떤 음식을 고르든 빈센트는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일단 주문을 받아 적기를 망설이면서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고는 어깨 너머로 지배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마치 음모라도 꾸미듯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손님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쉽게도 오늘 그 요리는 재료가 평소보다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신에 ◯◯나 ◯◯를 추천해도 될까요?” (그러면서 손님이 처음 골랐던 요리보다 약간 더 저렴한 요리를 한두 가지 권한다.) “오늘은 이쪽이 재료가 훨씬 좋습니다.”

첫째, 빈센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객이라도 빈센트가 자신들을 위해 뭔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호의를 베푼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빈센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결국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팁을 줄 때가 되면 빈센트에게 호의를 베풀게 된다. 둘째, 음식값 대비 팁의 비율뿐 아니라 음식값 자체도 높일 수 있다. 빈센트가 그날 저녁 좋은 재료가 무엇이고 좋지 않은 재료가 무엇인지 훤히 꿰고 있는 식당의 권위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래 손님이 주문했던 요리보다 약간 저렴한 요리를 권함으로써 빈센트가 자신에게 손해가 될 듯한 행동을 취했기에 더더욱 신뢰할 만한 정보를 주는 웨이터로 보인 것이다.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 웨이터가 아니라 진심으로 손님을 위해 봉사하는 웨이터의 모습 말이다.

 

 

요약

  • 권위에 복종하려는 이런 강력한 성향은 그 복종이 옳은 행동이라는 개념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심어주려고 마련한 체계적인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다. 더욱이 그런 권위자들은 보통 높은 수준의 지식과 지혜, 권력을 보유하고 있어 진짜 권위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따라 분별없이 권위에 복종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권위의 실체가 아니라 단순한 상징에 복종하는 성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에 따라 이런 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상징으로 밝혀진 것이 바로 ‘직함’과 ‘복장’, ‘자동차’다.
  • 이 권위 있는 인물이 정말 전문가인가? 이 전문가는 과연 얼마나 진실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을 통해 우리는 권위의 상징에서 눈을 돌려 진짜 권위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는 전문가의 지식이 상황에 적합한 지식인지에 대한 여부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얼마나 진실성 있게 대처하는지도 고려할 수 있다.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해 상대가 혹시 자신에게 약간 불리한 정보를 먼저 제공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PART 7. 희귀성의 원칙

최선은 희귀한 것, 최악은 잃어버린 것

수집 시장에서 희귀성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귀중한 실수’라는 현상이다. 인쇄가 번진 우표나 무늬가 겹쳐 찍힌 동전처럼 잘못 만들어진 품목들이 가장 가치 높은 수집품이 된다. 따라서 조지 워싱턴의 눈이 세 개처럼 보이는 우표는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고 미학적으로도 매력이 없지만, 많은 수집가들이 열렬히 원하는 품목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른 경우라면 쓰레기로 취급받았을 잘못 만든 물건들이 희귀성과 결합하면 자랑스러운 수집품이 된다.

 

사람들은 뭔가를 얻는다는 생각보다는 비록 가치가 같다 해도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Hobfoll, 2001). 대학생들은 멋진 데이트 상대나 높은 학점처럼 긍정적인 대상을 얻었다고 상상했을 때보다는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상상했을 때 훨씬 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특히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뭔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면 사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큰 영향을 받는다(Tversky & Kahneman, 1981; De Dreu & McCusker, 1997).

 

한정 판매

희귀성의 원칙을 가장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고객들에게 어떤 제품이 수량 부족으로 금방 매진될 것 같다고 홍보하는 ‘한정 판매’ 전략이다.

 

수량이 부족하다는 정보는 진실인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거짓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그 의도는 물품의 희귀성을 알려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다. 이 간단한 도구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설득의 달인들을 보면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기본적인 방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제품이 가장 희귀해진 순간, 즉 재고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순간에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구입 기회를 잃어 그 제품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손님들은 혹시 창고나 다른 보관 장소에 아직 재고가 남아 있을 확률은 없는지 물어본다. 판매사원은 마치 호의를 베푸는 듯 “아, 그럼 제가 가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여기 이 제품이고, 제가 창고에서 찾아오면 이 가격에 구입하신다는 말씀이시죠?”라고 묻는다. 이 기술의 놀라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희귀성의 원칙에 따라 제품이 가장 희귀해져서 고객이 가장 갖고 싶을 때 고객에게 그 제품을 꼭 구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럴 때 많은 고객들은 이미 마음이 달아 있어 꼭 구매하겠다고 약속한다.

 

타임세일 전략 (출처: Google)

시간 제한

한정 판매 전략과 비슷한 전략으로 ‘마감 시간(deadlime)’ 전략이 있다.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제한하는 전략이다. 몰몬교 사원 내부 관람에서 내가 보인 반응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평소라면 별로 하지 않았을 행동도 마감 시간이 임박하다는 이유만으로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많다.

 

한 유명 이론은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생존에 충분할 만큼 자원을 확보했다고 가정할 때, 자원을 더 확보하는 것은 생존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정도지만 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손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던 것이다(Haselton & Nettle, 2006).

 

고객에게 일대일로 압박을 가하면서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마감 시간 전략을 약간 변형해 사용한다. 이들은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궁극적인 마감 시간, 즉 ‘지금 당장’ 전략을 사용한다. 지금 당장 구매하지 않으면 나중엔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거나 아예 구매할 기회가 없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청소기 판매회사 영업부장이 강조했듯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방문 예약이 너무 많이 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고객이 제품 구매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못하도록 나중에는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야 고객들에게 당장 구매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반발

우리는 쉽게 입수할 수 있는 대상보다는 입수하기 어려운 대상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Lynn, 1989). 따라서 어떤 품목의 입수 가능성을 바탕으로 그 품목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희귀성 원칙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원칙을 따르면 대체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McKEnzie & Chase).

 

희귀한 것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너무 뿌리 깊다 보니, 가치 있는 것은 희귀한 것이라는 명제도 믿게 되었다(Dai et al., 2008).

 

더욱이 희귀성 원칙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근거가 있다.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면 우리의 자유가 축소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갖고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특권을 보존하려는 욕망은 심리적 반발 이론의 중심이다. 심리적 반발 이론이란 심리학자 잭 브렘(jack Brehm)이 통제권 상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설명하려고 개발한 이론인데(J. W. Brehm, 1966; Burgoon et al., 2002) 이 이론에 따르면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이나 위협을 받으면 자유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자유(그리고 그와 결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보다 더 갈구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제품이 희귀해지거나 어떤 다른 이유로 접근 가능성이 떨어지게 되면, 그런 제한에 대한 심리적 ‘반발’로 그 제품을 전보다 더 소유하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유리벽이 너무 낮아 뒤에 있는 장난감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때는 아이들이 유리벽 앞과 뒤에 있는 장난감 중 특별히 어느 한쪽을 선호하지 않았다. 유리벽 앞과 뒤의 장난감에 손을 대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유리벽이 너무 높아 뒤에 있는 장난감을 확실히 방어할 때는 아이들이 장애물 뒤의 장난감에 먼저 손을 댔다. 유리벽 뒤에 있는 장난감에 손을 댄 시간이 유리벽 앞에 있는 장난감에 손을 댄 시간보다 무려 세 배나 빨랐다. 이 연구에 참여한 남자아이들은 자유를 제한했을 때 미운 세 살배기가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 즉 철저한 반발을 보였다.

 

이 연구에서 세 살배기 여자아이들은 높은 유리벽에 대해 남자아이들처럼 반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여자아이들도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반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자아이들은 물리적 장벽보다는 사람이 마련해놓은 제한에 주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S. S. Brehm, 1981).

 

이런 심리적 반발은 왜 세 살 무렵부터 나타나는 것일까? 아마 아이들 대부분이 이 무렵에 겪는 결정적인 변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Howe, 2003). 자신을 주변 환경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인식한다. 자아 개념이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발달한다. 독립적인 존재란 선택의 자유가 있는 존재다.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은 그 선택의 한계를 끝까지 탐색해보고 싶어진다.

 

성인의 심리적 반발 - 사랑, 총기, 맥주

낭만주의자라면 세상에 보기 드문 완전한 사랑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과학자라면 양가 부모가 개입해 젊은 남녀한테 심리적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처음부터 양가의 반대를 뛰어넘을 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나중에 양가의 반대라는 장벽이 생기자 더 열렬히 타올랐던 것이다. 차라리 마음껏 사랑하게 내버려뒀더라면 철없는 풋사랑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연인들은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며 더 깊이 헌신하게 될까? 콜로라도 주에서 140쌍의 십대 연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확실하게 밝혀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부모의 반대는 연인 관계에 약간의 문제, 서로를 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어 서로의 부정적인 행동을 더 많이 지적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서로를 더 사랑하고 결혼을 더 갈망하게 되었다. 연구 도중에도 부모의 반대가 심해지자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해졌고, 부모의 반대가 약해지자 서로에 대한 로맨틱한 감정이 시들해졌다(Driscoll, Davis, & Lipetz, 1972).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시의회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인산염을 함유한 세제의 사용은 물론이고, 소유조차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연구에 따르면 이 조례에 대한 마이애미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플로리다의 전통을 반영하듯 많은 마이애미 시민들이 밀수꾼이 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친한 친구나 이웃들과 대형 트럭을 타고 인근의 다른 도시로 몰려가 인산염을 함유한 세제를 대량 구매해 돌아왔다.

 

두 번째 반응은 밀수나 사재기 같은 고의적인 반발보다 좀 더 미묘하고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손에 넣기 힘들면 더 갖고 싶어지는 성향에 따라 대다수의 마이애미 소비자들이 인산염 함유 세제를 전보다 더욱 좋은 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이애미의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탬파 지역 주민들과 비교할 때, 마이애미 지역 주민들은 인산염 함유 세제가 찬물에도 더 부드럽게 잘 녹으며 표백 효과와 얼룩 제거 효과도 훨씬 뛰어난 세제라고 평가했다. 조례가 통과되고 나자 인산염 함유 세제는 심지어 용기마저 더 사용하기 편리하게 디자인되어 있다고 믿었다(Mazis, 1975; Mazis, Settle, & Leslie, 1973).

어떤 대상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면, 그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받으므로 그 대상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진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이 커진 이유가 심리적 반발 때문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깨닫지 못한다. 그저 대상을 ‘원한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다. 따라서 갑자기 자신의 욕망이 커진 것을 합리화하려고 그 대상에 뭔가 긍정적인 특징들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검열

금지한 것을 더 원하고 결국 그것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세제 같은 상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같은 경향을 보인다.

 

더욱 희귀함을 느끼게 만드는 검열 (출처: pixabay)

정보 검열과 관련한 몇 가지 연구가 매우 일관성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어떤 정보를 검열하고 금지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금지 전보다 해당 정보에 더욱 호감을 보이면서 열렬히 원한다(Ashmore,Ramchandra, & Jones, 1971; Wicklund & Brehm, 1974; Worchel & Arnold, 1973; Worchel, 1992). 정보를 검열하면 사람들이 그 정보를 더 원하게 된다는 사실은 그다지 흥미로운 발견이라 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정보를 접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해당 정보를 더욱 신뢰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특정 현안에 대해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일부러 자신의 주장이 검열받도록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주류 정치집단의 일원 같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인기 없는 자신들의 주의나 주장을 널리 알리려 애쓰는 것보다는 공식적으로 검열을 받아 그 검열 사실을 알리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미국 헌법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 헌법 1조를 추가한 사람들은 철저한 시민자유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노련한 사회심리학자였던 셈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견해들이 비이성적인 심리적 반발의 과정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가능성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어떤 소설의 광고를 보여주었는데,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성인용, 19세 미만 구입 금지’라는 문구가 박힌 광고를,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연령 제한이 없는 광고를 보여주었다. 연구진이 학생들에게 책에 대한 느낌을 묻자 사람들이 모든 종류의 금지에 대해 보이는 것과 같은 반응이 나타났다. 연령 제한 문구가 박힌 광고를 본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그 책을 더 읽고 싶어 했으며, 만약 실제로 읽는다면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교육 자료에서 선정적 내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우리 사회, 특히 젊은이들이 성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퍼듀 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나 다른 연구들을 살펴보면 검열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는 시도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연구 결과에서 얻은 결론에 따르면, 검열은 학생들이 선정적 자료를 더 갈망하게 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이 선정적인 자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시각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사후에 벌어지는 또 다른 종류의 검열도 있다. 배심 재판을 하다 보면 먼저 어떤 증언이나 증거가 제시된 다음 판사가 적법한 증언이나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배심원들에게 무시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판사의 행동도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일종의 검열로 보일 수 있다. 정보 제공을 금지하기는 이미 늦은 탓에 배심원에게 그 정보의 이용을 금지하는 것이다. 정보를 무시하라는 판사의 명령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모든 정보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배심원단은 판사의 금지에 심리적 반발을 느껴 오히려 그 증거를 더 많이 고려하게 되지 않을까? 연구 결과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Lieberman & Arndt, 2009).

 

사람들이 접근을 제한한 정보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면, 상품을 넘어 메시지나 커뮤니케이션, 지식 정보 등에도 희귀성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정보가 검열을 당해야만 사람들이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정보가 희귀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희귀성의 원칙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여기는 정보를 보다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인다.

 

어느 날 내 사무실에서 희귀성과 정보의 독점 등에 관한 대화를 한 다음, 이 학생은 자기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의 회사 고객들은 주로 슈퍼마켓이나 식품점 등에 쇠고기를 납품하는 유통업자들이었는데,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세 가지 방법으로 구매를 권유했다. 첫 번째 집단의 고객들에게는 평소처럼 제품 정보만 제공하고 주문을 받았다. 두 번째 집단의 고객들에게는 평소처럼 제품 정보를 제공한 다음, 앞으로 몇 달 동안 수입 쇠고기 공급이 부족할 것 같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세 번째 집단의 고객들에게는 제품 정보와 앞으로 수입 쇠고기 공급이 부족할 것 같다는 정보, 그리고 공급 부족과 관련한 정보는 사실 아무나 접할 수 없는 고급 정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비밀 정보원을 통해 은밀히 알아낸 독점 정보라는 뜻이었다.

 

실험의 결과는 매우 명확했다. 직원들은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만한 재고가 없으니 당장 쇠고기를 더 수입하라고 사장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제품 정보만 제공받은 고객들에 비해 공급 부족과 관련한 정보를 함께 받은 고객들은 두 배나 많은 쇠고기를 구입했다. 하지만 정말 폭발적인 구매를 보여준 것은 공급 부족과 관련한 정보를 ‘독점 정보’라는 말과 함께 제공받은 고객들이었다. 이들은 평범한 제품 정보만 받은 고객들보다 무려 여섯 배나 많은 양을 구입했다. 쇠고기가 ‘희귀’해질 거라는 정보 자체도 ‘희귀’하다는 사실이 확실히 그 정보에 더 설득력을 부여한 것이다.

 

 

최적의 조건

새로운 희소성 - 더 비싼 과자와 시민혁명

우리는 원래 충분하다가 최근에 부족해진 것과 처음부터 죽 부족한 것 중에 어떤 것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할까? 실험 결과는 상당히 분명했다. 계속 부족한 경우보다는 충분하다가 갑자기 부족해진 과자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식의 갑작스런 부족 현상이 정치적 혼란이나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펼친 사람은 바로 제임스 C. 데이비스(1962, 1969)이다. 데이비스는 사회ㆍ경제적 조건들이 일정 기간 꾸준히 발전하다가 짧은 기간 동안 갑자기 악화될 때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혁명가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착취를 가장 심하게 겪은 하층민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궁핍한 자신의 삶을 자연 질서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는 윤택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 혁명가가 되기 쉽다. 어느 정도의 사회ㆍ경제적 발전을 경험하고 더 많은 혜택을 기대한 상황에서 갑자기 많은 것들을 빼앗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전보다 더 원하고 되찾기 위해 폭력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혁명이 보여준 역사적 패턴과 마찬가지로, 미국 흑인들도 일정 기간 사회ㆍ경제적 발전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후퇴하기 시작하자 그런 발전이 없었을 때보다 더 크게 반발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통치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런 패턴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약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애초부터 전혀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전통적으로 억압받던 집단의 정치ㆍ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려 하면, 그 집단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에 한번 부여했던 자유를 다시 빼앗으려는 기미가 보이면 엄청나게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을 예상해야 한다.

 

이런 역학관계는 국가뿐 아니라 가정에도 적용된다. 부모가 특권이나 규칙을 일관성 없이 적용하면 자녀들에게 부지중에 자유를 부여했다 다시 빼앗는 효과가 나타나 반발을 유도하는 원인이 된다. 부모가 어느 때는 간식으로 과자나 사탕 등을 허락하고, 또 어느 때는 금지하면 자녀들은 자유롭게 간식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간식을 금지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자녀가 이미 부여받은 자유를 빼앗긴다고 생각해 반발하기 때문이다.

 

희귀한 자원 확보 경쟁 - 어리석은 열정

P&G 사가 최근 뉴욕 북부에서 기존에 제품 구매 시 제공하던 적립 쿠폰을 폐지하고 제품 가격을 인하하는 실험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곧 고객들의 불매운동과 항의시위, 불평불만이 이어졌습니다. P&G 측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쿠폰 사용률은 겨우 2퍼센트대에 지나지 않았고 쿠폰을 사용하면 같은 값을 치르고도 오히려 제품 구매가 더 불편했는데도 말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고객들의 반발이 일어난 것은 P&G가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고객들이 쿠폰을 ‘빼앗길 수 없는 권리’로 보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무리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누군가 빼앗으려 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강력히 반발하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할인 쿠폰은 거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인의 일상에 파고들었고, P&G 사는 수십 년 동안 적극적으로 쿠폰을 발행함으로써 고객들이 쿠폰을 당연히 받는 것으로 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래 보유한 권리일수록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격렬히 저항한다.

 

일부 피험자들에게 처음에 과자가 열 개 든 단지를 제공했다가 나중에 과자가 두 개 든 단지와 바꿔주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연구진은 단지를 바꿔주면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일부 피험자에게는 연구에 참여하는 다른 피험자들에게도 과자를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1인당 과자 제공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또 다른 피험자들에게는 연구진이 실수로 처음에 과자를 잘못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험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1인당 과자 제공량을 줄이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피험자들이 연구진의 실수 때문에 줄이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피험자들보다 과자를 더 높이 평가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즉 수요 초과로 과자 공급을 줄였다는 설명을 들은 피험자들이 과자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

 

백화점 세일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쟁 (출처: EBN)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희귀해지면 더 갖고 싶어 하지만, 그 물건이 경쟁 상태에 있으면 그보다 훨씬 더 갖고 싶어 한다. 광고주들은 사람들의 이런 성향을 이용해, 어떤 제품이 매진이 임박했으니 서둘러 구매하라고 종용하는 광고를 내보내곤 한다. 사람들이 영업 시작 전부터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나, 여러 사람이 슈퍼마켓 진열대에 달려들어 상품을 싹 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는 평범한 사회적 증거의 원칙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제품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그 제품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의미도 전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중개인이 ‘형세 관망’ 중인 고객을 거래로 끌어들이려면, 전화를 걸어 또 다른 고객이 집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다음 날 다시 만나 거래 조건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새 고객은 완전히 꾸며낸 가상의 인물인 경우가 많다. 주로 부유한 외지인들로, ‘세금 문제로 주택을 구매하려는 다른 주에서 온 투자자’, ‘이사를 고려 중인 의사 부부’ 등이 가장 자주 등장한다. 부동산 중개인들 사이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기’라고 불리는 이 전략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경쟁자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구매를 망설이던 사람이 갑자기 서두르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 낚시꾼들과 백화점들은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 낚아 올리고 싶은 고객 또는 물고기에게 경쟁적 열정을 일으킨다. 물고기를 끌어들이고 자극하기 위해 낚시꾼들은 미리 밑밥을 뿌려둔다. 마찬가지 목적으로 할인 판매에 들어가는 백화점들은 ‘미끼 상품’이라 불리는 질 좋고 저렴한 제품을 몇 개 골라 대대적으로 광고를 한다. 그러면 물고기 떼가 밑밥에 몰려들듯 수많은 사람들이 미끼 상품을 구매하러 백화점으로 몰려온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경쟁하다 보면 점점 흥분해 맹목적이 되어버린다. 물고기나 사람이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잊어버리고 경쟁의 대상이 된 것에 무조건 달려드는 것이다.

 

모두가 열렬히 갈망하던 대상을 ‘놓친’ 사람이 미소 짓는다는 점이다. 소동이 가라앉고 나서 패자가 마치 승자처럼 의기양양해 보인다면, 그 소동을 일으킨 상황 자체를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 경우엔 바로 희귀한 자원을 놓고 벌어진 공개 경쟁이었다. TV 방송국 경영진이 깨달았듯이 희귀한 자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마다 우리는 매우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취해야 한다.

 

 

희귀성의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실제로 대비책을 세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희귀성 원칙이 작동하면 무엇보다 우리의 이성적인 사고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상을 손에 넣지 못하면 사람은 신체적인 반응을 겪는다. 특히 누군가와 직접적인 경쟁 상황에 돌입하면 혈압이 올라가고 시야가 좁아지고 감정이 격해진다(Teuscher, 2005).

 

상황 전체를 지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의 흐름을 경고 신호로 인식한다. 누군가 우리를 설득하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면, 상대가 희귀성의 원칙을 전략으로 사용한다고 직감하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소개한 과자 연구에서 연구진은 희귀성 원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피험자들은 과자가 희귀해지면 과자의 가치는 더 높이 평가했지만, 맛을 더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결국 희귀성은 과자에 대한 욕망을 키울 수는 있어도(피험자들은 희귀한 과자를 앞으로 더 손에 넣고 싶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과자의 맛은 조금도 높이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희귀한 대상을 사용하는 데서가 아니라 소유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희귀성의 압력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그 대상에서 원하는 것이 소유 가치인지, 사용 가치인지 자문해야 한다. 만약 희귀한 대상을 갈망하는 이유가 그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ㆍ경제적ㆍ심리적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때는 희귀성의 압력에 굴복해도 된다. 희귀성의 압력을 통해 자신이 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손에 넣기 어려울수록 가치는 더 높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순수하게 소유하는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려고 뭔가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먹고, 마시고, 만지고, 듣고, 운전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이런 때에는 어떤 대상이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맛있고 더 느낌이 좋고 더 운전이 잘되고 더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고객이 관심을 보이며 자동차를 직접 보고 싶어 하면 방문 약속을 잡는데, 놀랍게도 모든 문의 고객에게 ‘같은 시각’을 정해주었다. 만약 여섯 명의 고객과 약속을 잡는다면 전부 같은 날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하는 것이다. 겹치기 약속이라는 이 사소한 전략이 나중에 자동차를 판매할 때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번째 고객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한다. 자동차의 장단점을 따지며 여유롭게 구매 결정을 내리는 처지에서 졸지에 경쟁이 치열한 대상을 앞에 놓고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몇 분 안에 리처드가 제시한 가격으로 자동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저쪽에서 기회만 엿보는 두 번째 고객에게 자동차를 빼앗기게 된다.

 

두 번째 고객도 한정된 자원을 놓고 첫 번째 고객과 경쟁을 벌이니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그 역시 경쟁 때문에 갑자기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자동차를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처음 도착한 고객이 구매를 꺼리거나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바로 달려들어 자동차를 낚아채려는 심산이다.

 

수많은 고객들은 자신들의 구매 결정과 관련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바로 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은 욕망이 커졌던 것은 자동차의 성능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점이다. 고객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리처드가 꾸민 상황 자체가 고객들이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둘째, 그 결과 애초에 자신이 그 차를 구입하려던 이유가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 희귀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 처하자 자동차를 소유라는 관점에서 맹목적으로 갖고 싶어진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요인은 그들이 자동차를 원하는 진짜 이유, 즉 자동차를 사용하는 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그 대상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본다. 그 대상을 소유하고 싶어서라는 답이 나오면 그 제품의 희귀성을 기준으로 삼아 그 제품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을지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그 제품을 원하는 이유가 주로 기능적인 것(먹고 마시기 위한 것이나 운전하기 위한 것 등)이라는 답이 나오면 구매를 고려 중인 제품이 희귀하든 풍부하든, 기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희귀한 과자라고 맛이 더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요약

  • 희귀성 원칙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한정 판매’와 ‘마감 시간’ 전략이다.
  • 첫째, 대체로 입수하기 어려운 것은 귀중한 것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름길 원칙에 따라 입수하기 어려운 물품이나 체험은 질이 뛰어나다고 결정해버린다. 둘째, 뭔가를 입수하기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를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자유를 잃어버리면 결국 ‘심리적 반발’ 원리에 따라 그 대상(그리고 그 대상과 관련한 상품이나 서비스까지)을 더욱 간절히 원한다.
  • 연구에 따르면 어떤 메시지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면 사람들은 그 메시지에 더 접근하고 싶어 할 뿐 아니라 더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접근을 제한한 정보가 더 높은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다. 정보 검열이 이루어지는 경우 사람들이 그 정보를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 정보에 설득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첫째, 기존에 풍부하던 어떤 대상이 갑자기 희귀해지면 가치가 급격히 높아진다. 처음부터 수량이 한정적이던 대상보다 최근에 희귀해진 대상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다. 둘째, 희귀한 자원에 가장 강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을 놓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상황이다.

 

 


PART 8. 지름길 원칙을 사수하라!

피네 "머리를 기르고 다니시니까 꼭 여자처럼 보이네요."

자파 "그쪽이야말로 나무 의족을 달고 다니니까 꼭 테이블처럼 보이는군요."

 

 

원시적 자동 판단

피네와 자파의 재치 넘치는 대화는 이 책의 핵심 주제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입수 가능한 모든 관련 정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전체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정보만 이용한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들은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실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더욱이 영리한 설득의 달인들이 우리의 그런 실수를 이용하려 들면, 우리는 더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인간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또한 효율성을 위해서 때로는 오랜 시간 모든 정보를 고려해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의 특징에 근거해 자동적이고 원시적으로 반응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부탁을 수락할지 말지 결정할 때 우리는 주어진 관련 정보 중 단 하나의 단편적인 정보만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앞의 내용에서 우리는 설득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가장 자주 참고하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그런 정보들을 자주 참고하는 이유는 우리를 바른 결정으로 인도해주는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설득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 권위, 희귀성이라는 요소들을 그토록 자주,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바쁘고 압박감이 심하며 불확실하고 무관심하고 정신이 산만하고 피곤한 경우에도 되도록 최소한의 정보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때는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최선의 단편 정보(single-piece-of-good-evidence)’에 의존한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불안한 결론에 이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해준 정교한 정신 능력 덕분에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빠르고 정보가 넘치는 환경을 만들어냈고, 그 때문에 우리가 오래전에 뛰어넘은 하등동물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현대적 자동 판단

갤럽의 연례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종류는 점점 더 다양해지는 반면 존속 기간은 더 짧아지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여행한다. 거주지도 더 자주 옮기고, 거주지 자체의 건설과 해체도 더 빨라진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되 인간관계를 맺는 기간은 짧아지고 있다. 슈퍼마켓과 자동차 대리점, 쇼핑몰 등에서는 1년 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제품을 접하겠지만 불과 1년 후에는 그런 제품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현재 우리의 문명을 묘사하려면 참신성, 찰나성, 다양성, 가속성 등의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주의할 점이 있다. 현대 사회는 ‘정보 시대’라 불려도 ‘지식 시대’로 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는 바로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처리하고, 평가하고, 흡수하고, 이해하고, 통합하고, 보유해야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의사결정의 지름길이여, 영원하라!

절대 묵과하면 안 되는 진짜 부당 행위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름길 반응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훼손시키는 경우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신뢰할 만한 지름길, 바람직한 경험의 법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지금도 현대인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누군가 우리의 경험 법칙 중 하나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보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름길 원칙이 최대한 효과적이기를 원한다.

 

 

요약

  • 우리 사회는 인지적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어 지름길을 이용한 의사결정의 비율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 의사결정의 지름길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유발 요인을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복해야 한다.

 


서평

처음 이 책을 마주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이었습니다.

평소에 잘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순간의 판단 뒤에 숨어 있는, 아주 강력한 설득의 동기들을 단 6가지로 정리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영역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든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내 생각에 대한 타인의 동의가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무분별한 설득에 당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방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이야기에 쉽게 휘둘리며, 자기 스스로의 중심을 잡기 어렵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자정 작용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이슈를 맞닥뜨릴 때, 정확한 근거를 확인하기 전까지 소위 '중립 기어를 박는다'는 반응이 나타나는 건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러한 반응은 이 책에서 설명하듯 내가 고생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에만 나타납니다.

즉, 특정한 주제를 제외한 여타 영역에서는 여전히 우리는 자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합니다.

 

인간 사회의 절대적 핵심 요소인,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근본적인 나침반이 되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닌, 우리 모두가 꼭 필수적으로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책과 관련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설득의 심리학
국내도서
저자 :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 황혜숙역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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