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시장과 도덕
특정 재화를 사고팔아도 무방하다고 결정할 때, 우리는 최소한 은연중이라도 그것을 상품으로, 즉 이윤을 추구하고 사용하기 위한 도구로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p.27)
우리는 시장경제를 가진 (having a market economy) 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being a market society) 시대로 휩쓸려왔다.
두 개념의 차이는 이렇다. 시장경제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다. 이에 반해서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의 이미지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p.29)
누군가 섹스를 하거나 간을 이식받는 대가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여기에 동의한 성인이 기꺼이 팔고자 한다면, 경제학자가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얼마죠?"일 뿐이다. 시장은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p.33)
1. 새치기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는 현상은 낭비이면서 비효율적 행동이고, 가격체계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들은 공항, 놀이공원, 또는 고속도로에서 좀 더 빠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에 가격을 매김으로써 경제적 효용을 높이는 것이라 믿는다. (p.42)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려면, 재화는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암표 거래가 바로 시장이 효율적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예다. ... 암표상은 티켓에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최고 가격을 매김으로써,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가 실제로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p.53)
우리의 목적이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유시장이 줄서기보다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재화에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려는 것이 꼭 해당 재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에는 자발적으로 지불하려는 마음만큼이나 지불할 수 있는 능력도 반영된다. (p.55)
어떨 때는 공연을 관람하거나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줄을 서고자 하는 태도가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태도보다 관람을 정말 원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지표일 수 있다. (p.56)
종교 의식이나 자연의 경이로움을 사고팔 수 있는 재화로 다루는 것은 그것을 향해 경의를 표현하는 태도가 아니다. 신성한 재화를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바꾸는 행위는 그 가치를 잘못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p.63)
그러므로 모든 재화가 줄서기나 돈을 지불하는 것 중 어느 한 가지 원칙에 의해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때때로 규범은 변하며, 어떤 원칙이 우선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p.66)
2. 인센티브
해리스는 "출산을 할 권리가,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권리보다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예로 든다. 해리스 부부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거주하는 코카인 중독 여성들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나는 아이들을 고통에서 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작정이다. 누구도 자신의 중독을 다른 인간에게 억지로 떠넘길 권리는 없다." (p.72)
일부 비판자들은 프로그램이 나치의 우생학을 상기시킨다고 하지만, 불임시술에 현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은 당사자 간의 자발적 협정이다. 주 정부는 개입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의 의지에 거슬러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도 없다. 한편,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마약 중독자들에게 현금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순수하게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해리스는 그들의 판단력이 그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면 임신과 자녀양육에 대해 어떻게 분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반박한다. (p.73)
따라서 시장 거래의 도덕적 상태를 평가하려면 우선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시장 거래는 어떤 조건에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며, 어떤 조건에서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가?" (p.74)
정치적 부패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한 판사가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내릴 때, 그는 자신의 사법적 권위가 대중의 신뢰가 아니라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수단인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적합한 수준보다 낮은 규범에 따라 사법적 권위를 다룸으로써, 자신의 공직을 타락시키고 그 품위를 떨어뜨린다. (p.75)
따라서 여성의 생식능력이 시장 거래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려면 우선 그것이 어떤 종류의 재화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몸을 원하는 대로 소유하고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로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자기 몸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자기비하에 해당하는 행위도 있을까?" (p.76)
돈은 결과를 외부로 드러내는 효과를 내서 학업 성취를 '멋진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인센티브 액수가 학업 성취의 결정적 요인이 아닌 이유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AP 인센티브 프로그램의 대상 과목을 영어, 수학, 과학에 국한시켰지만, 역사와 사회 등 다른 AP 과목 수업의 출석률도 덩달아 높아졌다. 해당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유는 학업 성취를 이루도록 돈으로 학생들을 매수해서가 아니라 학업 성취가 학교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p.86)
나는 뇌물이라는 혐의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금전상의 동기가 더욱 바람직한 다른 동기를 밀어낸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건강에 좋은 자세는 콜레스테롤 수치와 체질량지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신체적 행복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계발하고 자기 신체를 돌보고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도록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행위는 이러한 행동을 키울 수 없고 오히려 해칠 수도 있다. (p.91)
하지만 오늘날 넘쳐나는 인센티브 제도는 그 수준을 넘는다. 물질적 추구와 거리가 먼 활동에도 분명하고 실질적인 가격을 매김으로써 베커의 그림자 가격을 그림자 밖으로 끌어내 실제 가격으로 만든다. 인센티브 제도는 모든 인간관계가 궁극적으로 시장관계라는 베커의 주장을 현실화하고 있다. (p.94)
한 국제기관에 권한을 주어 부유한 정도에 따라 연간 난민의 수를 각 국가에 할당한다. 그리고 국가 간 난민 수용 의무를 서로 사고팔 수 있게 허용한다. 예를 들어, 일본이 연간 2만 명의 망명자를 할당받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이 의무를 러시아나 우간다에 돈을 지불하고 팔 수 있다. 시장논리의 기준에 따르면 이렇게 하는 경우에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 러시아나 우간다는 새로운 국가 수입원을 가질 수 있고 일본은 외주를 통해 난민 수용 의무를 이행하고, 더 많은 난민들이 피난처를 찾는 대신 구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법학 교수 피터 슈크 (p.97)
난민 시장이 성립하면 구매자, 판매자, 흥정 대상이 되는 피난처를 소유한 국가를 비롯한 당사자들은 난민을 위험에 처한 인간존재로 보기보다는 털어버려야 하는 짐이나 수입원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p.97-98)
이스라엘 어린이집의 사례는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주장하는 일반 경제학 논리의 모순을 보여준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올 때 느꼈던 죄책감이 요금을 지불하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변질되어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규범을 바꾼 것이다. (p.98)
그랜드캐니언에 쓰레기를 버릴 때 부과되는 벌금이 100달러이고, 어떤 부자 등산객이 빈 깡통을 계속 들고 공원 밖으로 나가는 수고를 아낀 대가로 그 정도 비용은 낼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가정하자. 그는 벌금을 요금으로 생각해서 맥주 캔을 그랜드캐니언에 던져버린다. 그 부자가 돈을 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랜드캐니언을 값비싼 쓰레기통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랜드캐니언의 가치를 적절한 방식으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99-100)
하지만 비디오 대여점은 사업체다. 비디오를 빌려주고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비디오를 늦게 반납하고 그만큼 연체료를 지불한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유익한 손님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규범은 차츰 바뀌고 있다. 요즘은 비디오 대여점에서도 연체료를 벌금이 아닌 요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p.104)
벌금이 단순히 요금 개념으로 바뀐다면, 능력 있고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녀를 더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이상한 산업에 정부가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p.105)
우리는 아이를 가난한 사람이 아닌 부자들만 감당할 수 있는 사치품으로 만드는 것을 주저한다. 자녀 출산이 인류 번성의 핵심이라면, 돈을 지불할 능력에 따라 이러한 재화에 접근할 기회를 주는 처사는 공정하지 않다. (p.107)
하지만 출산권을 사고팔게 되면 아이를 금전적 측면으로만 보는 태도를 부추겨 부모의 의미를 오염시킨다. 부모애에 관한 규범의 핵심은 자녀는 양도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고, 자녀가 거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다른 잠재 부모에게서 아이나 아이를 낳을 권리를 사는 것은 이처럼 부모의 의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p.107)
기후 변화에 국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자연계에 대한 새로운 태도, 즉 새로운 환경 윤리가 필요할 것이다. 효율성이 어떠하든 국제시장에서 오염배출권이 거래된다면 책임 있는 환경윤리에 필요한 공동 희생정신과 자제의 습관을 계발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p.113)
요점은 시장이 특정 규범, 즉 거래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반영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재화를 상품화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과 분배 정의 이상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시장 규범이 비시장 규범을 밀어낼 것인지 물어봐야 하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이 우려할 만한 상실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p.116)
우리는 늘 그렇듯이 도덕적 논리가 없이는 시장논리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뿔소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식을 둘러싼 도덕적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코뿔소를 사냥하는 권리를 거래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만한 의견이 분분한 문제다. 하지만 시장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교환되는 재환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란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p.119)
트로피 헌팅이 적절한 방식으로 야생동물의 가치를 평가하는가의 여부는 논란의 핵심을 이루는 도덕적 문제다. 이 문제는 우리를 다시 한 번 태도와 규범의 문제로 돌아가게 한다.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 사냥권을 시장에서 거래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러한 행위가 동물의 수를 늘리는 데 기여하는지 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올바른 방식을 나타내고 증진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p.120)
한 가지 이유는 바다코끼리 사냥이라는 이상야릇한 시장이 사회적 효용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비뚤어진 욕구를 채워줄 뿐이기 때문이다. (p.123)
이누이트 족의 생활 방식을 기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바다코끼리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과 특권을 악용하여 동물을 죽여 현금을 손에 쥐는 부업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p.123)
그레고리 맨큐가 자신의 영향력 있는 경제학 교과서의 최근 개정판에서 제시한 경제에 관한 정의를 생각해보자. "'경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경제는 사람들의 무리가 살아가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일 뿐이다." (p.124)
1970년대에 게리 베커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했던 '그림자 가격'은 실질적이지 않고 암시적이었다. 그림자 가격은 경제학자들이 상상하거나 가정하거나 추론하는 은유적인 가격이었다. 하지만 인센티브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가 고안하고 만들어내고 세상에 부여한 제도다. (p.125)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도덕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방식을 가리키고, 경제학은 세상이 실제로 작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적용하려면 그것이 장려해야 할 태도와 규범을 변질시키는지 따져봐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p.127)
따라서 시장논리가 물질 재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경우에, 사람들의 선호에 담긴 도덕적 가치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적 효용을 맹목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p.129)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면 어떤 활동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비시장 규범을 밀어내는 것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어진 활동에 담긴 도덕적 이해를 살펴봐야 하고,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불이익을 안김으로써 해당 활동을 상품화하면 그 같은 도덕적 이해를 밀어낼지도 판단해야 한다. (p.130)
3.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시장 교환은 노벨상을 가치있게 만드는 선(善, the good)을 변질시킬 것이다. 노벨상은 명예로운 재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사는 행위는 상에서 얻으려는 선을 훼손한다. 노벨상이 거래되었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수상자는 더 이상 명예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p.136)
이것이 바로 선물 교환에 반하는 경제적 논리다. 여기에는 몇 가지 단서가 붙는다. 최신 첨단 전자제품처럼 친구가 좋아하지만 잘 몰랐던 물건을 선물하면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친구는 그만큼의 현금으로 다른 물건을 직접 샀을 때보다 훨씬 기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선물 교환의 목적이 선물 받는 사람의 행복이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기본 전제와 일치하는 특별한 경우다. (p.142)
하지만 사랑은 정보의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랑은 상대방과 함께 있고 상대방에게 반응하는 방식이다. 선물을 주는 행위, 특히 마음을 담은 선물 교환은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마음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좋은 선물의 목적은 소비자 선호를 만족시킴으로써 선물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일정한 친밀감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선물을 받는 사람과 교감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선물을 교환할 때 사려 깊은 태도가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p.145)
태버록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평범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직접 사지는 않을 품목을 선물로 받고 싶어한다. 적어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는 "열정적인 자아, 열광하는 자아, 낭만적인 자아"를 자극하는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p.146)
따라서 선물 교환에 반대하는 경제적 입장은 도덕적으로 중립이 아니다. 이 입장은 우정에 관한 어떤 개념, 즉 많은 사람들이 퇴색했다고 여기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p.148)
공정성에 관한 반박에서는 사람들이 불평등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시장 교환은 시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항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농부가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자신의 신장이나 각막을 팔겠다고 동의할지 모르나 정말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불공정하게 강요받았을 수도 있다. (p.157)
하지만 부패에 관한 반박은 다르다. 이는 시장의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특정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사고파는 경우에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된다. 부패에 관한 논쟁은 공정한 거래계약 조건이 성립됐다고 해서 충족되지는 않는다. 평등한 조건과 불평등한 조건 아래서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p.157)
공정성과 관련한 논거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동의, 좀 더 정확하게는 공정한 조건하에 이루어지는 동의다. 시장을 이용한 재화 분배에 찬성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시장이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p.158)
부패에 관한 반박은 다른 종류의 도덕적 이상을 지적한다. 여기서는 동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치 평가와 교환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여겨지는 재화의 도덕적 중요성에 호소한다. (p.158)
다만 심각한 불평등으로 생겨난 불공정한 거래 조건에 따른 재화의 거래에 대해 반대한다. 배경 조건이 공정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재화의 상품화에 관해서는 반대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패 논쟁은 재화 자체의 특성과 재화를 지배하는 규범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공정한 거래 조건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힘과 부에 불공정한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시장이 단지 메커니즘에 불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장은 특정 가치를 구현한다. 또한 때때로 시장가치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비시장 규범을 밀어낸다. (p.159)
오히려 훌륭한 스위스 시민들은 사적으로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오자 시민의 문제를 금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장 규범이 침입하면서 시민의 의무의식을 밀어냈던 것이다. (p.162-163)
공공재는 폐기물 처리장 유치 결정으로 시민이 져야 하는 부담과 희생을 인정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활주로나 쓰레기 매립지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주민에게 지불하는 보상금은 자칫 지역사회의 훼손을 묵인하는 데 대한 뇌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새로 건립한 도서관.놀이터.학교 등은 공동체를 강화하고 공공정신을 존중함으로써 시민의 희생을 동일한 가치로 보상한다. (p.164)
어린이집이 약 12주 후에 벌금제도를 없앴지만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수는 늘어난 상태 그대로였다. 금전적 지급으로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일단 잠식당하고 나자 과거의 의무감을 되살리기는 어려웠다. (p.166)
내재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약화시킬지 모른다. 일반 경제학 이론은 성질이나 출처에 상관없이 모든 동기를 선호로 해석하고 그것이 모두 부가적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돈의 잠식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p.170)
하지만 티트무스의 반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혈액이 시장 상품으로 바뀌면 혈액 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의무감을 잠식해서 이타주의 정신을 약화하고 사회적 삶의 능동적 특징인 '기증 관계'를 훼손한다는 것이다(부패에 대한 반박). (p.172)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p.177)
서머스는 경제학자들이 "개인에 대한 존중과 욕구, 취향, 스스로 내리는 판단과 선택을 상당히 강조한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공리주의적 입장에 서서 공공선을 사람들의 주관적 선호의 총합으로 설명했다. "많은 경제학적 분석의 기초는 선은 사람들의 자기 행복에 대한 개인적 평가의 총합이고, 별개의 도덕론에 기반한 개인적 선호와 분리되어서는 평가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p.179)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p.180)
4. 삶과 죽음의 시장
직원이 이런 제도에 동의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정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태도다. 청소부 보험은 직원이 살아 있는 것보다 죽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직원을 사물화한다. 즉 회사는 직원의 가치를 직원의 업무에서 찾지 않고 직원을 상품선물(일반 상품을 매매 대상으로 하는 선물계약)로 다루게 된다. (p.189)
하지만 말기환금이 안고 있는 재정적 위험은 대부분의 투자에는 없는 도덕적 문제를 낳는다. 투자가는 최초 보험계약자가 빨리 죽기를 기대한다. 최초 보험계약자가 오래 살수록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p.191)
생명보험을 판매하는 회사는 계약자의 이익에 거스르지 않고 계약자 편에 서서 도박을 한다. 계약자가 오래 생존할수록 회사는 돈을 많이 번다. 하지만 말기환금에서 거두는 재정적 이익은 정반대다. 회사의 관점에서는 계약자가 일찍 사망할수록 좋다. (p.193)
도박꾼들이 난민을 곤경에 처하게 한 것이 아니라면 난민이 얼마나 빨리 죽을지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도박을 하는 양측은 도박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적 논리상 절대 도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난민들은 도박의 결과로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것이 규제 없는 생명보험 시장에 흐르는 경제적 논리다. (p.202)
전통적 정보수집 방법보다 예측 시장이 유리한 점은, 시장이 관료적이고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정보 왜곡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정보를 보유한 중간 단계 전문가는 곧장 시장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확신하는 정보에 돈을 걸 수 있다. (p.209)
어쩌면 절박한 상황에서, 이는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도덕적 대가일 수도 있다. 부패에 관한 논쟁이 항상 결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을 통해 우리는 시장 열광자들이 자주 놓치는 도덕적 사고로 관심을 돌릴 수 있다. 테러리스트 선물시장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에서 국가를 막아낼 유일한 돌파구이거나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한다면 이러한 시장이 권장하는 대로, 도덕적으로 둔감해진 상태로 살겠다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악마의 거래일 뿐이며, 따라서 테러리스트 선물시장에 대한 반감을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p.212)
때로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하는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다. 생명보험은 이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겨날 수 있는 재정적 위험에 대해서 가족과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지난 두 세기 넘게 한 개인의 생명에 피보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을 놓고 도박을 벌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투기를 향한 유혹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p.222)
5. 명명권
맥과이어가 예전 기록을 깨면서 시즌 62번째 홈런을 치자, 그 공을 잡은 팀 포너리스라는 팬은 공을 팔지 않고 "맥과이어 씨, 이 공은 당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즉시 맥과이어에게 건네주었다.
야구공의 시장가치가 워낙 컸으므로 포너리스의 이처럼 너그러운 행동을 보도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은 그러한 행동을 칭찬했지만 비판하는 기사도 있었다. 스타디움에서 파트타임 구장관리인으로 일하는 스물두 살의 청년 포너리스는 그 일을 계기로 디즈니월드 행렬에 초대 받았고, 데이비드 레터맨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출연했으며, 백악관에 초청 받아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초등학교에 가서 올바른 행동에 관해 아이들에게 강연도 했다. 하지만 이렇듯 찬사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한 개인금융 칼럼니스트는 《타임》에 글을 실어 공을 선수에게 넘겨준 결정은 "우리 모두가 저지르는 개인금융 죄"라고 묘사하며 포너리스의 경솔함을 비판했다. 일단 포너리스가 "공을 잡았다면 그것은 그의 공"이라고 칼럼니스트는 주장했다. 자신이 잡은 공을 맥과이어에게 되돌려준 것은 "우리 대부분이 일상생활의 돈 문제에 있어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만드는 태도"의 전형적인 예라고 강조했다. (p.230)
사실상 20세기에도 야구경기장은 기업 임원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핫도그나 맥주를 사기 위해 모두 똑같이 줄을 서며, 비가 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젖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현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경기장 높이 자리한 스카이박스가 등장하면서 부자와 특권계층은 아래의 일반 관람석에 앉는 보통사람들과 분리되었다. (p.238-239)
125년 동안 믿음직스런 미시간 팬들은 나란히 함께 서서, 함께 추위에 떨었고, 함께 응원했으며, 함께 승리했다. 호화로운 박스석은 그러한 전통에 완전히 반하는 것으로, 미시간 팬을 소득 수준으로 가르고 그들의 화합을 해칠 뿐 아니라 미시간 팬이라면 나이와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경기를 함께 관전하며 느끼는 흥미와 동지애를 훼손시킨다. 미시간 경기장에 호화 박스석을 건립하겠다는 생각은 미시간대학이 전념한 평등주의 이상에 위배된다. (p.241)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저런 시장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경기의 선을 향상시키는지 훼손시키는지 여부다. 이는 야구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p.246)
따라서 광고가 있어도 되는 영역과 있어서는 안 되는 영역을 결정하려면 소유권이나 공정성에 관해 논쟁을 벌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관행의 의미와 사회 관행이 나타내는 재화의 의미를 놓고 논쟁해야 한다. 또한 각 경우에 상업화가 관행을 타락시키는지 여부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p.257)
일부 광고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사회를 전체적으로 상업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행위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면 환경을 파괴하듯이, 새로운 영역으로 팽창한 광고가 처음에는 받아들여질 만하더라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지면 사회 전체가 기업 후원과 소비지상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p.258)
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첫째,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과자료의 대부분은 편견과 왜곡, 피상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놀랄 것도 없이, 소비자 연맹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육자료의 80퍼센트가 후원자의 제품이나 관점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둘째, 설사 기업 후원자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질의 객관적 교육도구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 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에 유해할 것이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 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p.272)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p.274)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사회적 위치.태도.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p.275-276)
해제 - 샌델 도덕이론의 핵심 :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샌델의 입장은 한마디로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the priority of the good over the right)'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정의를 지향하는 옳음의 관점을 무시하고 좋음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옳음의 이념을 완성하려면 좋음의 관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의를 추구할 때 행복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말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한 자기본성, 덕의 실현에 따른 것이며 단순한 만족감 같은 의미에서의 행복은 아니다. (p.322-323)
참된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삶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며, 경제는 그러한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경제를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는 윤리다. (p.325)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다. 하면 안 되는 것, 돈으로 사려고 해서도 안 되고 팔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p.327)
* 서평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책입니다.
샌델 교수는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 여러 관점에서 논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샌델 교수는 정의와 경제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철학적으로 풀어냅니다.
'경제적이다'라는 것에 함축되어 있는 효율성의 논리에 정반대로 작용하기도 하는 사회 정의,
이에 대해 저는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연관짓고 싶습니다.
지금 글을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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